에피3 리뷰를 빙자한 잡담

2005. 5. 26. 16:51Favorite/StarWars


에피3에서 가장 의외였던 대사는 오비완의 "저를 황제에게 보내주세요. 전 아나킨을 칠 수 없어요. 그는 저에게 동생과도 같아요" 였습니다. 제 안의 오비완은 좀 더 훨씬 더 냉정하고 냉철하고 냉혈한 원칙주의자에 완벽주의자인 인물이어서 아나킨의 배반을 알고서는 아무리 억장이 무너져도 "저를 보내주세요. 이렇게 된 것은 전부 제 책임입니다"라고 할 줄 알았단 말이죠. 그런데 막상 뚜껑 열고보니 심지어 아나킨의 변절에 대해서도 딱히 책임을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네 스스로 자초한거야"라고 할줄은 정말 몰랐죠. 아니 사실은 에피5에서 아나킨은 죽었다고 단언하는 것을 보면서 예상은 했습니다만. 오비완에대한 저의 망상이 제 눈을 가렸습니다.

게다가 듣고 있는 아나킨이 정신이 멀쩡한 그런 상황이 될 바에야 저로썬 화산 사제대결 끝부분의 "널 사랑했었어"보다는 원래 스크립트의 "난 널 구하지 않을 거야"가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나킨의 시선에서 눈을 노골적으로 피하고 혼잣말처럼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거죠. 난 널 구하지 않을 거야...구하지 않아...그래요. 마치...자신에게 납득시키듯이, 아나킨에게 들으라는 듯이...아나킨은 분노와 서러움으로 몸도 마음도 타오르는 겁니다. 하지만 무력하죠. 정말이지 아나킨이 정신을 잃고서 말할 줄 알았는데 "널 사랑했었어"는... 뭐 그래도 널 사랑했었어-라면서도 냉정이 돌아서버리는 오비완을 바라보는 아나킨의 기분은 그것대로 착잡할 것 같아서 좋긴 합니다만...

뭐랄까 아나오비 사제의 사이가 그럭저럭 애틋할 것이라는 점을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에피3에서 아나킨과 오비완의 관계가 지나치게 호전되어있어서 좀 당황했습니다. 오비완을 완전무결한 제다이로 그리기 위해서 이 이야기는 보다 사악하고 치밀한 구성을 가질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느끼게 되는 이유는 바로 제가 프리퀄 세대이기 때문이겠죠. 프리퀄을 먼저 보고 클래식을 접한 저는 결국 클래식에서 보여줬던 선지자적 존재인 오비완 케노비에 대한 인상이 옅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에피3시점에서 오비완이 그만큼 완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당연히 예상했어야 마땅한데,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에피3가 저에게는 왜 그렇게 재미가 없었는가-를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에피3의 가장 큰 사건은 아나킨과 오비완의 사제대결인데도 불구하고, 내용면에서 이 사제간의 갈등이 그다지 문제시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원인 아닐까 싶습니다. 아나킨은 오비완이 미워서 싸운 것이 아니었죠. 아나킨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파드메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실에대한 공포와 능력에 비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대한 불만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표면적인 동기일 뿐. 그의 영혼의 근저에는 힘에 대한 동경과 힘을 행사하고싶은 욕구가 깔려있지요. 저는 사실 파드메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구실일 뿐이고, 근본적으로 아나킨을 좀먹는 것은 스스로도 다룰 수 없는 욕망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때문에 어둠이 아나킨의 영혼을 잠식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를 기대했습니다만, 영화가 보여준 것은 그게 아니었죠. 파드메를 구하기 위한-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만 부각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무스타파에서 아나킨이 파드메에게 한 짓이나 시스가 된 후의 아나킨의 대사들을 보면 분명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뭐 아나킨에 대해서는 일개의 클론병사를 구하고 싶어할 만큼, 오비완을 위험에 버려두고 혼자 임무를 위해 떠나지 못할 만큼 다정다감한 인물이었는데, 그랬던 아나킨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되었다-라는 기본적인 구도는 이루고 있습니다만. 뭔가가 결정적으로 부족한...느낌이 자꾸 들어버립니다. 아나킨의 오비완에 대한 섭섭함이나 증오가 좀더 나와주던가...아나킨의 다크사이드한 욕망이 좀더 부각되거나...했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망상해봅니다.

개인적으로 아나킨 관련으로 가장 웃었던 것은 역시 그 다스베이더 가면씌우는 그 장면의 얼굴이...구 스타워즈의 아나킨 얼굴만큼 옆으로 부풀어 있어서...뭐 화상으로 부풀었다고 하면 할 말 없습니다만 절대 헤이덴의 본래 얼굴보다 넓적했던 것이 어찌나 웃기던지orz....다들 감동받았다는 그 장면에서 저는 쿨럭..베이더님 죄송해요.

한편 오비완은 제다이이기때문에 제다이로서 시스로 타락한 아나킨을 칩니다. 그는 처음엔 아나킨을 칠 수 없다고 요다에게 간청?하지만, 제 아무리 아나킨이 눈에 집어넣어도 아프지 않을 옛 제자이자 둘도 없는 그의 친구라고 하더라도 오비완은 아나킨 한 사람을 위해 제다이로서 존재할 것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아나킨이 어린 수련생들을 몰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오비완에게도 쉬운일은 분명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파드메에게 아나킨의 변절사실을 전할때의 오비완의 약간 높고 떨리는 음색과 말을 띄엄띄엄 끊어하는 것, 파드메의 시선을 등지고 하는 것등에서 그의 고뇌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오비완의 아나킨에 대한 사랑은 끝까지 일관성있어서 도리어 아나킨의 "당신을 증오해~!" 가 맥락없이 들어간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

오비완은.....글세요 전 에피3에서 그려진 오비완이 예상외로 너무 아나킨을 믿어주고 감싸주는 것 같아서... 뭐 분명히 이쪽도 그렇게 믿고 그렇게 아끼고 그렇게 감쌌고 그렇게 사랑하고 언제나 함께했던 두사람인데-란 구도를 만들고 있습니다만...왜 이렇게 얄팍하고 불완전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불가사의...이게 바로 연출의 신비..? 만약 오비완이 홀로그램을 조금만 더 봐서 아나킨의 "파드메를 구할 방법만 알려주신다면 무슨말이든 듣겠어요"(?)라는 대사를 들었더라면 오비완 역시 아나킨 안에 남아있는 선을 보고 그를 구할 수 있었을까요...뭐 그런 감질맛나는 부분이 꽤 재밌긴 합니다만은.

사족입니다만 나중에 아기를 받아줄 때 파드메가 오비완에게 "아나킨에겐 아직 선한 마음이 남아 있어요. 난 느낄 수 있어요" 란 말을 했던 것을 근거로, 역시 오비완은 루크가 다스 베이더가 된 아나킨을 구원해줄 것이라고 예감했던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루크가 형이더군요. 아무리봐도 남동생 타입입니다만..

무스타파에서의 대화는 전체적으로 맘에 듭니다. 그 중에 I've failed you는...오비완의 그 투명하고 고요한 표정과 맞물려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것 내가 널 계속 실망시켜왔어...아닌가요? 짧은 영어 실력에...)이 대결동안 오비완의 감정이 격해지거나 하는 일 없이(you were the chosen one! 이 부분 예외) 정말 제다이로서 임했다는 실감이 일더군요.^^ 아나킨이 강세..?이긴 했지만 오비완이 훨씬 안정적으로 싸웠죠. 개인적으론 클론워즈에서 Don't fail your self가 가장 맘에 드는 대사 였기때문에 더 와닿더군요.

(오늘 다시 보고 오니 제대로 번역된 것 맞더군요....틀린 것은 제 기억...죄송합니다.;;)

어쨌거나 전 에피3가 그다지 재밌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오마담!이라고 외치고 싶을만큼 귀엽고 예쁘고 인상좋고 힘들어하고 추스리고 책임지는 오비완때문에 연신 환희의 비명을 내질렀습니다. 물론 마음속으로요. 거의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작동하지 않는구나 제대로된 리뷰따윈 쓸수 없겠구나-이게 극장에서 본 소감입니다.

아, 참고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스타파에서 "우리의 비밀을 알고 계셔. 그는 널 돕고 싶어해."라는 파드메의 말을 들은 아나킨이 파드메의 눈을 피하며 땅을 향해 부끄러운 듯이 살갑게 웃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아나킨은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알고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