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완 케노비.
그의 광팬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척 조심스러워진다.
망상이 구축해놓은 그의 그림자는 원작에서의 위용을 거의 갖추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이 블로그를 개설했을 때 날 여전히 사로 잡고 있던 구도는 아나킨은 부모와도 같다고 제 입으로도 인정한 자신의 마스터 오비완을 증오하고 있으며, 심지어 살해하고 싶도록 미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킨은 결코 자신의 손으로 오비완을 해칠 수는 차마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나를 기쁘게했다.
아직 에피3를 보지는 못했지만 루카스가 6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루카스는 아나킨과 루크라는 부자뿐 아니라, 콰이곤과 오비완, 오비완과 아나킨의 사제라는 굴레에 빗대어 부모와 자식이라는 가족관계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이 관계는 애정을 전제로 하지만 언제나 권위의 상하와 힘의 지배가 함께 한다.
나는 아나오비 사제의 관계를 미성숙한 부자관계로 정의했다. 그러나 사제지간이란 부자지간과 유사하다고는 해도 엄연히 다르기 마련이어서 체념하고 용서하여 수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인 피의 유대가 없는 두 사람의 애증은 감추고 보듬을수록 더욱 곪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 마치 달콤함이 지나쳐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한 과실처럼-...그런 생각을 할 때면 정말 즐거웠다.
한편으로는 이 사제의 나이 차이가 여러모로 애매한 15세 텀이라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것이 아마도 내가 안정적인 콰이곤과 오비완의 관계에 거의 관심을 갖지 못하고 오로지 아나킨과 오비완사이의 갈등에만 집중하게된 원인일 것이다.
일반적인 부모와 자식은 한 세대-약 30년의 나이 차이가 난다. 자식이 어릴 때, 부모는 젊고 강하다. 그러나 자식이 완전히 장성했을 때 쯤이면 부모는 노쇠하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 자식이란 지배자인 부모가 결코 달갑기만 한 것은 아니며, 때로는 증오하고 복수를 염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날개가 충분히 뻗고 힘이 충분히 강해졌을 때 돌아본 부모는 이미 노쇠하고 약해져 있다. 인간이란 이기적이어서 이런 슬픈 사실에 우선 화부터 난다. 비겁하고 치사하게도 부모는 더 이상 이 손으로 꺾고 이 다리로 뛰어넘을 존재가 아니다. 자식이란 그제서야 그렇게 부모의 진을 빼놓은 존재야 말로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되돌아 보게 된다. 사실은 화가난 것이 아니라 슬픈 것이라는 점을 그제야 안다. 그런데 아나오비는 그것이 불가능한 15세의 나이 차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오비완(35)이 아직 여전히 젊고 건재한 지금 아나킨(20)은 어릴 적부터 축적되어온 분노를 스스로 접어야 할 하등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것이 에피2를 보면서 내가 읽은 맞물리지 않는 사제의 삐꺽이는 모습이자, 내가 예상한 에피3에서 두 사람이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큰 원인이다. 그러나 곧 자신이 이야기에서 매우 큰 줄기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아나킨을 친 것은 오비완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고, 심지어 그의 아들을 이용해 더스베이더로 거듭난 아나킨을 칠 계획을 짠 사람이 오비완이라는 점 또한 난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오비완이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밖에 없다.
아나킨에 대한 애착이 컸던 만큼 오비완은 더스베이더에 대한 용서가 없다. 만약 예전에 망상 차원에서 썼던 4편에서 오비완은 이미 루크가 아나킨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 아닌가하는 가능성을 따지지 않는다면 오비완이란 캐릭터는 정말 무섭다. 친자식과도 같은 제자인 아나킨을 치는 것은 둘째치고 그의 아들을 이용해 그 아이의 아버지를 살해할 획책하는 그 철두철미함이 무섭다. "너는 네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등의 발언에서 볼 때, 루크만은 다크사이드로 빠지지 않게 하리라-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루크로서 더스베이더를 치게 하리라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것 같기도하지만, 결과론자이며 대체로 귀납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인 나로써는 참 찜찜하고도 무섭다고나 할까. 분명히 할 땐 하는 캐릭터를 좋아하고, 실제로 그렇다고 인정한 사람만 곁에 두었으며, 오비완이 이만큼 확실히 돌아서지 않았더라면 난 결코 오비완을 좋아하지 않았을테지만 자신의 취향이 참으로 섬?하다.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기준에 벗어난다면 스스로가 그 기준으로부터 일말의 여지도 없이 쳐내어 질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심란함을 불러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