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Books2014.08.30 01:15


방송 조명 이야기
국내도서
저자 : 김태홍
출판 : 씨마스 201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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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위주라서 조명업계종사자가 아닌 나한텐 어려웠던 책.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안전수칙 정도였으나 방송영상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보며 업무환경을 상상해 보는 것이 즐거웠다. 다른 예술 기술분야와 마찮가지로 조명연출또한 노가다인 부분과 창조적인 부분이 아주 밀접하게 불가분의 관계로 연관되어 있는 듯. 업무가 노가다성도 짙어서 무거운 조명기구를 다뤄야한다는 점이나 주로 남자스텝들과 밤샘작업등을 자주 하게 되는 업무환경 등을 고려해볼 때 여자가 하기에 쉽지않은 분야겠구나 싶은 면도 있었다. 조명팀과 미술팀간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율한 경험담을 보면서 실무자로서 수정사항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갖을 필요성을 느꼈다. 예측불가능한 외부 요인을 통제하기위해 변수에 대한 대안을 최대한 꼼꼼하게 준비하되 예측불가한 변동이 생겼을 때 신속하게 문제해결하는 기지가 요구되는 듯.


Posted by logosles
MEMO/Books2013.08.24 10:18


운명이다 (양장)
국내도서
저자 : 노무현
출판 : 돌베개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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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었다. 지금 내가 써야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회고록을 써야한다. 영광이나 성공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시행착오와 좌절과 실패의 회고록이다.

 내 인생에 성공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나를 지배하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들이다. 처음에는 다들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고 했다. 조금 지나자 "역사가 알아줄 것"이라는 덕담으로 바뀌었다. 임기 내내 경제 파탄, 민생 파탄,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사람들과 싸웠다. 나는 대통령을 했지만 정치적 소망을 하나도 성취하지 못했다. 정치를 함으로써 이루려 했던 목표에 비추어 보면 처절하게 실패한 사람이다. 정치인으로서는 실패했지만 시민으로 성공해 그 실패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대통령을 할 때보다 더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어떤 기회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p50

봉하와 인근 마을에는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많이 잇었다. 4.19 혁명이 나자 사람들이 집단 학살 당한 시신을 파냈다. 어느 유골이 누구의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결국 김해로 가는 국도 근처에 합장해 큰 봉분을 만들고 합동 위령제를 지냈다. 5.16이 난 뒤 누군가 그 묘를 파헤쳐 버렸다. 봉분만 파헤쳤는지 유골까지 다 흩어 버렷는지는 모르겟지만, 묘를 파헤친다는 것은 아주 끔찍한 느낌을 주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5.16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내 기억은 이런 것으로 남아 있었다.

 시험을 잘 봐서 부일장학생으로 뽑혔다. 당시에는 장학회가 별로 없었다. 나는 부일장학회를 운영한 [부산일보] 사장 김지태 선생을 평생 존경했다. 그는 무려 25년 동안 부산상고 동창회장을 맡아 모교 발전과 인재양성에 헌신했다. 나는 중학생 때 부일장학금을 받았고 부산상고에서도 동창회 장학금을 받았다. 둘 모두 김지태 선생이 만든 장학회였으니 그분이 내 인생에 디딤돌을 놓아준 은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5.15이 난 후 기지태 선생은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등 재산을 거의 다 빼앗겼다. 부일장학재단 재산도 모두 5.16장학재단으로 넘어갔다. 그것이 나중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딴 정수장학재단이 되었다. 거사 자금을 대주지 않았다고 군사쿠데타 세력이 보복을 한 것이다. 해외에서 돌아오는 사람을 반지 밀수 혐의를 씌워 구속한 다음 협박해서 재산을 다 빼앗았다.

 나는 변호사가 된 후 언젠가는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소송 준비를 했다. 정수장학재단은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 비영리 공익재단이지만 누가 운영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정수장학재단은 지금도 부산 지역 최대 신문인 [부산일보] 주식을 100% 보유하고 있다. [부산일보]의 공정성과 신뢰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 장학재단은 '범죄의 증거'이며 '장물'이다. 정의를 실현하고 뒤틀린 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합당한 자격을 가진 유족이나 시민 대표들에게 운영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백방으로 방법을 찾아보았다.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절차가 없었다. 국민 여론으로 풀어보려 해도 정수장학 재단의 실질적 주인인 박근혜 씨가 야당 대표로 있어서 쉽지 않았다. 야당 탄압이라는 오해와 비난이 일어날 위험이 있었다. 세상이 바뀌긴 햇는데 좀 이상하게 바뀌었다. 군사정권은 남의 재산을 강탈할 권한을 마구 휘둘럿는데, 민주정부는 그 장물을 되돌려 줄 권한이 없었다. 과거사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채 권력만 민주화되어 힘이 빠진 것이다. 부당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한테 더 좋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억울하지만 이것이 우리 역사의 한계일 것이다. 정수장학회 문제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날 잘못된역사 대문에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 장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소유자가 정권까지 잡겠다고 했다. 그런 상황까지 용납하고 받아들이자니 너무나 힘들었다.


p57

내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와 병원 입원비 보증을 선 친구가 부산상고 동기생인 원챃의였다. 그는 평생 동안 나를 보살펴 주었다.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 변소하슬 할 때,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국회의원직 사표를 던지고 잠적했을 때, 대통령에 출마를 했을 때, 검찰에 소환되던 때, 그리고 내 집 안마당에조차 나가지 못하던 때도 나를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에게 내가 해 준 것이 없다. 그래서 더 고맙고 미안한 친구였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지배 받지 않는 경우에도 환경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당시 내가 본 울산 막노동판 합숙소 분위기는 교도소 감방과 비슷했다. 고참과 신참의 구분이 있었다. 사납고 힘센 자들의 횡포도 여간 아니었다. 모였다 하면 술이요 화투였고, 입만 열었다 하면 온통 욕설뿐이었다. 누구를 패고 여자를 겁탈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공사장 모터나 철근을 빼돌려 팔아먹을 궁리에 여념이 없었다. 지나가는 여자들을 음담패설로 희롱했다. 요즘 같ㄴ으면 성추행으로 형사처벌을 받고도 남을 짓을 버젓이 저질렀다.

 국회의원이 된 후 전국 선설일용노동조합 간부들을 여러 번 만났는데, 내 기억 속의 노동자들과는 전혀 다르게 의젓하고 당당했다. 노동조합도 아주 건강하게 잘 운영하고 있었다. 환경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꼈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직업적 자부심을 체득하면서, 사회에 대해서도 나름의 건전한 생각을 키우고 있었다. 버림받은 사람은 도덕적 성숙을 이루기 어렵다. 자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자부심이 있어야 모범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시켜야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기회, 참여, 책임..... 대통령을 하면서도 늘 이런 것들을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했다.


p69

어린 시절 어머니는 수도 없이 당부하셨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법 앞에 장사 없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어머니는 "갈대처럼 살라" 하셨다. 갈대는 바람이 동쪽에서 불면 서쪽으로 눕는다. 서쪽에서 불면 동쪽으로 눕는다.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작문을 거부해 소동이 벌어졌을 때도 들었던 이 말이 나느 ㄴ지독히도 싫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출세를 하겠다는 강한 욕망을 품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설우을 벗어나고 싶었다. 힘이 생기면 나처럼 고생하며 사는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판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어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돈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알아보고 굽실거리는 사람도 많았다. 살맛이 났다. 출세해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겟다던 어린 시절의 꿈은 어느새 슬며시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에게 변호사는 잇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오히려 해로운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돈이 없으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다. 그래서 변호사는 대채ㅔ로 돈 있는 사람 편이 되어 없는 사람 괴롭히느 ㄴ일을 한다. 양심의 갈등이 없지는 안항ㅆ다. 하지만 부모형제를 돌보고, 노후 대책으로 부동산도 좀 사 두고, 시골에 농장이나 별장 하나쯤 장만해 보고싶은 생각이 양심을 앞섰다.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심사엿던 것이다. 해마다 입시에 무슨 수석 합격자가 미디어에 나와, 장차 법관이 되어 간나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거나, 의사가 되어 헐벗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포부를 말하는 것을 들으면 혼자 쓴웃음을 짓곤 했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들 가운데 누군들 그런 포부를 말해 본 경험이 엇겠는가. 이렇게 비웃으면서 자꾸 고개를 내미는 양심의 거리낌을 덮어 보려고 했다. 자기 직업에 충실하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 올바르게 이바지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논리를 방패삼아,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즐겼다.

 그러니 사회에 관시미 있을 리 없었다.


p77

나는 어쩌다 보니 이 사건에 손대게 되었다. 당시 부산에서 지속적으로 인권운동을 한 변호사는 이흥록, 김광일 두 분밖에 없었다. 그런데 검사가 김광일 변호사까지도 사건에 엮어넣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변호를 맡을 수가 없었다. 손이 모자란다는 하소연을 듣고 있을 수 없어서, 아무것도모르는 내가 변호를 맡게 된 것이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일단 구치소로 피고인 접견을 갔다. 그런데 여기에서 상상치도 못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고문을 받았는지 초췌한 몰골을 한 청년들은, 변호사인 내가 정보기관의 끄나풀이 아닌지 의심하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모두 영장 없이 체포되었고 짧게는 20일, 길게는 두 달 넘게 불법 구금되어 있으면서 몽둥이찜질과 물고문을 당했다. 그들이 그렇게 학대 받는 동안 가족들은 딸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발톱이 새카맣게 죽어 있었다. 한 젊은이는 62일 동안 불법 구금되어 있었다. 그 어머니는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시신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던 김주열을 생각하면서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영도다리 아래부터 동래산성 풀밭까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헤매고 다녔다. 변사체가 발견되엇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혹시 아들이 아닌지 가슴을 졸이며 뛰어갔다. 그 청년의 이름은 송병곤이었다.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졌다. 사실 법리를 따지기도 전에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랏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법정에서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변론을 하기가 어려웠다.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당사자와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처참한 고통을 거론하면서 공안기관의 불법 행위를 폭로하고 비판했다. 방청석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검사 뿐만 아니라 판사도 표정이 일그러졌다. 법정 분위기가 험악했다. 다음날 보자고 해서 검사를 만났더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느냐고 나를 힐난하면서 협박했다. "부산에서 변호사 한두 명 죽었다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 될 줄 아시오?"


p79

변론을 하면서 청년들을 자주 만났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성적도 우수하여 남보다 나은 자리가 보장되어 잇는데, 왜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마저 내팽개치고 자기 앞날을 망치는 어리석은 일을 고집하는지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젊은 그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자신과 가족, 부모형제를 먼저 챙기면서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잇다는 노리가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의 고통과 권력의 부정부패 사회적 불의를 내 문제가 아니라고 모른 체하면 내 삶이 부끄러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인가 더 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관련된 사건의 무료 변론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멀었던 눈이 한 번 떠지자, 비로소 힘 없고 가난한 사람이 당하는 핍박과 설움이 또렷이 보였다. 그들의 아픔이 내 가슴에도 전해져 왔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과 그에 대한 울분이 되살아낫다. 무엇인가 더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무료 변론은 돈 좀 덜 벌면 그만이었지만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언제 어디로 끌려가 무슨 죄목을 뒤집어쓰고 쇠고랑을 찰지 모르는 위험한 일이었다. 조그만 농장이나 별장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자식을 외국 유학이라도 보내서, 공부를 다 못 한 우리 부부의 한을 풀어 복자고 했던 꿈을 접어야 했다. 이렇게 양심과 욕망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나는 차근차근 주변을 정리했다.


p97

보통 국민들ㄹ이 돈 걱정 취직 걱정 덜 하고 억울한 일 당하지 않으면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목적인데, 정작 정치를 하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정치에 무엇을 바쳤는지는 헤아릴 수가 없다.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가 어렵다. 그런 것이 정치인의 삶이다. 아내가 정치 입문을 그토록 강력하게 반대했던 것은 이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예측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결국 정치를 함으로서 아내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길을 막아 버렸다.


p101

전국의 노사분규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몸으로 부딪쳤다. 오라는 데는 어디든 마다 않고 갔다. 작은 성과라도 얻을 때는 국회의원 된 보람을 느꼈다. 노동자들에게 호랑이처럼 군림하던 경찰서장이나 노동부 고위관리들이 굽실거리는 것을 보면서 유치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개인이 할 수 잇는 일이 사실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경찰은 내 눈앞에서 노동자들을 끌어가고 노점상 포장마차를 뒤집어엎었지만 도울 방법이 없었다. 예전에 같이 얻어맞고 끌려갔을 때는 고통을 함께 겪는 떳떳함이라도 있엇는데 이젠 그마저 없엇다. 삶이 왠지 불편해졌다. 박해 받는 사람들 가운데서 박해 받지 않고 산다는 것, 그런 상황이 안겨 주는 불편한 느낌,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때에도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그 낯익은 고통과 죄의식이 다시 찾아왔다.

 특히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문송면 군의 죽음과 '원진레이온 사건'이다. 1988년 여름 서울 양평동 온도계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문송면 군이 일을 시작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수은중독에 걸렸다. 중독 판정을 받고 석달도 되지 않아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겨우 열 다섯이었다. 같은 시기에 원진레이온 사건이 일어났다. 원진레이온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던 회사로, 일본에서 중고 기계를 들여와 비스코스 인견사를 생산했다. 그런데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이황화탄소가 문제였다. 환기 시설이 없는 작업장에서 안전장비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노동자들이 신체가 마비되는 병에 결렸다. 피해자 가족들이 협의회를 만들어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이 그들을 도왔다. 88서울올림픽을 코앞에 둔 시기였지만, 우리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산업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통일민주당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단아한 언행으로 국민의 신망을 받았던 평민당 박영숙 부총재와 함께 현장 조사를 나갔다. 우리는 회사ㅣ를 추궁해 직업병임을 인정하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합의서를 받아 냈다. 그러나 회사 측은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다시 회사를 찾아갔다. 거기서 휠체어에 앉은 사지마비 환자를 만났다. 어린 달이 곁에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안면 근육이 전부 마비되어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려 했다. 열서넛 먹어 보이는 딸이 내 차 유리창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우리 아빠 좀 살려 주세요!"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그 아버지의 일그러지고 굳어 버린 빰 위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내가 저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괴감을 주체할 수 가 없었다 1988년 7월 임시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을 하면서 참담한 노동현실에 대한 분노를 있는 그대로 터트려 버렸다.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케이크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란 말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로 수없이 많은 격려 전화가 왔다. 그러나 당장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p116

3당합당은 두 가지 충격을 주엇다. 첫째,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엇고 영남은 보수 정치세력읫 ㅗㄴ아귀에 완전히 들어가고 말앗다. 이것은 우리 정치사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지역구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 되었다. 둘째, 우리 정치를 통째로 기회주위 문화에 빠뜨렸다. 철새 정치의 수준이 달라진 것이다. 정치적 야심을 가진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려고 당을 옮겨다니는 일은 그전에도 잇엇다. 그렇지만 정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던 정치 지도자가 그런 일은 한 적은 없었다. 3당합당으로 인해 한국 정치는 적나라한 기회주의 문화에 휩쓸려 들어갔다. 소신도 원칙도 없이 국회의원 당선이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떼를 지어 보따리를 싸들고 이 당 저 당 돌아다니는 것이 별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20년 동안 나는 쉼 없이 싸웠다. 지역 분열주의에 맞섰고 기회주의에 대항했다. 내가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내세웟던 구호 '원칙과 통합'은 이 기나긴 싸움의 핵심을 표현한 것이었다.


p126

김영삼 대통령을 '훌륭한 정치 지도자' 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그러나 '조직의 탁우러한 보스'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의원직 사퇴서를 내고 도망갔을 때, 어쩌다 보니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긴말 할 것 없이 일단 만나자고 했다. 상도동으로 갔더니 김영삼 총재가 손님들을 다 내보냈다. 그가 뭐라고 하든 단호한 사퇴 의사를 밝히려고 마음먹었지만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뜻밖에도 당신 마음을 다 이해한다며 나를 위로햇다. 노 의원 같은 사람이 견디기에 정치판이 너무 험하다고 했다. 어디 가서 낚시라도 하라며 2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쥐어 주었다. 사퇴 철회 문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진심으로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어 부하로 만드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김영삼 총재가 3당합당 대는 김정길 의원과 나를 아예 부르지 않았다.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햇거나 쓸모가 없어졌다고 여겼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와 갈라섰다.


p128

독자적으로 해보려 했지만 돈과 조직이 없어 어려웠다. 할 수 없이 곁불을 쬐며 선거운동을 했다.

 이기택 대표가 사람들을 모아 밥을 먹는 자리이ㅔ 끼어 밥을 얻어 먹엇다. 이기택 대표와 김정길 의원의 연설이 끝나고 나면 슬그머니 일어서서 나도 연설을 했다. 그때마다 김정길 의원이 나를 소개해 주었다. "품 안의 자식만 귀한 게 아닙니다. 새어머니 등쌀에 구박을 받고 나가서 얻어먹고 다녀도, 나중에 효도하는 수가 있습니다." 나는 동정표를 많이 얻어서 5등으로 당선되었다.


p146

DJP연합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념과 노선을 100% 순수하게 밀고가기는 어렵다. 국민들이 후보를 볼 때 정치 성향만이 아니라 능력과 안정감 등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해서 판단한다. 정당에 대해서도 그렇다. 누가 주도하는지를 본다. 주도세력의 색깔이 그 정당의 색깔이다. 대통령 후보가 김대중 총재로 결정된 이상 주도세력 문제는 정리가 된 것이 아닐까? 야당도 때로 야당의 인물들만 가지고는 전국에 후보를 낼 수 없다. 야당 출신을 우대하면서도 중립지대에 있엇거나 과거 여당에 종사했던 사람도 찾는 것이다. 정당을 순종만 가지고 할 수는 없다. 중간 지대를 많이 포섭해 나가야 한다. 주도세력의 성격과 철학이 뚜렷하면 된다. 


p160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의 해방과 통합을 위해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까지 뜻을 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햇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 현대사의 존경받는 위인은 왜  패배자뿐인가? 우리 역사는 정의가 패배해 온 역사라는 말인가? 정의가 패배하는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p167

2000년 8월 7일 해양수산부 장관 발령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나는, 적잖이 거북하지만 또한 무척 안쓰러운 동지였을 것이다. 당이 달랐을 때 심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총재로 모시고 당을 함께 하면서도 거칠게 치받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러나 당의 이름을 걸고 부산에 출마해 거듭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나를 기특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장관을 시킨 것 아닌가 싶다. 2001년 3월 26일 퇴임했으니, 8개월도 채 되지 않는 짦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늘 혼자 정치를 한 것이나 다름없던 내게는 말할 수 없이 큰 축복이었다. 해양수산부라는 정부조직의 수장으로서, 대한민국 국무위원으로서 나는 국정운영 전반을 보고 배울 기회를 얻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이해찬, 한명숙, 정동영, 김근태, 정세균, 이상수, 이재성, 김두관, 천정배, 정동채, 유시민 등 많은 정치인을 국무총리와 장관으로 기용했다. 모두들 능력 잇는 사람들이기도 햇지만, 국정운영 전반을 경험하고 공부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정치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p171

해양수산부 장관으로서 일을 얼마나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가기관을 운영할 때 꼭 따라야 할 기본 원리를 여기서 시험해 보았고 결과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중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내세웠던 국정운영의 기본원칙들을 나는 해양수산부에서 다듬었다. 자율과 분권, 투명과 공정, 부단한 학습과 지식의 공유 같은 것들이었다.


p188

1987년 이후 대통령들은 모두 임기 후반에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여당 대통령 후보들은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선거 전략을 썼다. 대통령들은 집권당을 떠났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에 이러 김대중 대통령도 그렇게 되었다. 책임정치의 원리에 어긋나는 아주 나쁜 관행이다.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나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 비극이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였다. 우리 역사에 그런 지도자는 없엇다. 정말 오랜 기간 동안 독재와 싸웠다. 암살 위기도 겪었다. 구속당하고 연금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그래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민주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국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나면 그런 사람은 보통 투표를 할 필요도 없는 수준의 지도자가 된다. 건국의 아버지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 바츨라프 하벨, 레흐 바웬사 대통령이 모두 그랫다. 그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햇다. 6.10 민주항쟁 이후 민주세력이 분열되었고, 냉전 시대 독재정권이 그가 마치 공산주의자인 것처럼 이미지에 덧칠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김대중 대통령을 민주주의 지도자가 아니라 친북인사 또는 용공분자인 것 처럼 잘못 보았다. 게다가 호남인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과 지역감정까지 작용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국민의 지도자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해외에서 그런 것처럼 나라 안에서도 국보급 지도자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1987년 민주 세력 분열에 대한 절반의 책임은 있었다. 대통령으로 일하는 동안 흠 잡힐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분을 빼고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기여를 했다. 외환위기로 곳간이 텅 빈 나라를 맡아 정보통신과 문화의 강국으로 일으켜 세웠다. 복지국가의 기초를 만들었다. 증오와 대결의식이 지배하던 한반도에 공존과 협력의 숨결을 불어 넣엇다. 크고 작은 상처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대통령이었다.

 무엇보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서를 많이 하는 지도자였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잇는데, 저자가 서문에 이렇게 써 놓은 것을 보았다. "세종대왕은 책을 많이 보면서 거기서 정책을 찾곤 했는데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햇다." 아주 잘못 안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 계실 때 큰 방하나가 통째로 서고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감옥에 갇히고 자택에 불법 연금되어 있었던 시기에 독서를 많이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그런 엉뚱한 소리를 써 놓은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냥 민주투사가 아니고 뛰어난 사상가엿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잇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지식을 전략적으로 요령 있게 활용하는 지혜까지 지닌 특별한 지도자였다. 국민들이 그것을 잘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p204

정몽준 씨가 노무현과 후보단일화를 한 것은 사실상 보수의 분열을 의미했다. 이회창 후보는 1997년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약점을 노출시켰다. 그렇게 하고서도 우리는 60만 표를 채 이기지 못햇다.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쪽에,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 세력은 죽을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 나는 20년 정치 인생에서 이런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 세력이 승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보수 세력은 조직이 매우 크고 강하다. 이념적으로 튼튼하게 결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의 결속력도 매우 강하다. 공동의 이익에 근거를 둔 네트워크를 감성적 네트워크로 재조직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어느 지역 어느 집단에서나 돈 많고 권력 있고 지위 높은 사람은 거의 다 보수의 네트워크에 가입되어 있다. 게다가 보수 세력은 인구ㅗ가 많은 영남을 장악하고 있다. 큰 신문사, 큰 기업의 소유자, 큰 연구소를 모두 보수가 장악하고 있다. 법원, 검찰, 국정원 등 국가기관은 그 본질적 속성상 보수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라이온스 클럽, 로터리클럽, JC(청년회의소) 등 경제적 여유가 있는 민간 자생 단체와 지역사회의 소위 관변 단체들도 모두 보수가 우세하다. 학술원과 각종 학회, 지식인 사회도 보수가 압도적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보수의 나라인 것이다.

 반면 진보 세력은 지역으로 갈라져 있고 이념으로 분화되어 잇다. 돈 있는 사람이나 경제적 영유가 잇는 단체가 별로 없다. 진보적 시민단체조차도 기업의 지원을 얻지 못하고 언론이 외면하면 힘을 쓰지 못한다. 튼튼한 정책연구소도 거의 없다. 그런데 보수의 나라에서 진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얕게 뿌리 내린 작은 나무에 너무 많은 과일이 매달린 형국이다. 두 차례의 대선 승리와 10년의 집권도 보수와 진보의 불균형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보수와 진보의 격차는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의 자산 규모 차이만큼이나 크다. 진보적인 대통령이라도 보수의 네트워크에 포위되어 고립당하면 힘을쓰기 어렵다. 변명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는 그런 조건에서 대통령이 되엇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낮은 것도 같은 원인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데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p255

개방 전략은 아무리 정밀하게 연구하고 분석해도 위험과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선택의 폭도 좁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위험을 안고 뛰어들거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위험을 회피하는 것. 이것 둘뿐이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보면 장기적으로 FTA를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적어도 낙오를 면하려면 그 불확실성을 안고 뛰어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차피 뛰어들 것이라면 남보다 먼저 해야 앞서 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했다.


p269

임기 내내 한 번도 국정원장의 독대 정보보고를 받지 않았다. 정례보고든 수시보고든 독대보고는 없었다. 국정운장의 보고를 받을 때는 과니련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를 반드시 배석시켰다. 대통령이 국정원장의 독대보고를 받으면 대통령은 저절로 제왕이 된다. 국정원의 보고는 안보 정책과 대북 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정원법 규정이야 어떠하든, 국정원은 정치, 정부, 사회, 문화, 언론, 기업 등 사회 전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방대한 조직을 보유하고 있다. 잘 훈련받은 요원들이 습관적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대통령이 국정원장과 독대해서 다른 누구도 모르는 정보를 보고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국정원의 정보 집중력은 더욱 강해진다. 대통령에게 보고되기를 바라는 정보를 자발적으로 국정원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정원의 정보 수준은 더욱 높아지고 권력은 강화된다.

 예를 들어 장관들의 업무 성과와 주요 정책,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가 보고에 포함된다고 하자. 장관들은 국정원장 독대보고에 그런 내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처의 고위 공무원들은 그 보고 내용을 좋게 만들기 위해 자진해서 국정원 조저오간에게 비공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면 장관들은 불안해진다.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몰라서 불안하다. 대통령이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해서 불안하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를 헤아리는 데 골물하게 된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게 되고 대통령이 깊은 검토없이 말한 단순한 의견도 대통령의 '깊은 뜻이 담긴 지침'으로 받아들인다. 보고를 할 때 대통령의 눈치를 살핀다. 다양한 현안을 다루는 관계장관회의에서도 토론을 하거나 대통령의 이해도를 높이는 창의적인 보고를 하기보다는 대통령의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보고를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분권이니 자율이니 하는 것은 모두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고 만다.

 국정원장 독대보고의 부작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정원은 독대보고를 무기로 삼아 더욱 넓고 깊게 정보를 수집한다. 국정원의 보고서는 다른 모든 기관의 보고서를 능가하게 된다. 그럴수록 대통령은 점점 더 국정원 보고에 의존하게 된다.ㅣ 나중에는 대통령이 국정원을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국정원이 저오의 힘으로 대통령을 조종할 수도 있다. 그런데 국정원의 판단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권력을 집중하려는 속성이 발동하면 정보를 왜곡하고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정원 보고에 의존하는 대통령이라면 이미 그런 왜곡을 알차리기 어렵게 된다. 대통령이 나라를 어뚱한 곳을 끌고 갈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정을 파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p273

나는 검찰의 중립을 보장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도 부당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다.


p274

검찰 조직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서 두 가지 제도 개혁을 추진했다. 하나는 검차로가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었다. 다른 하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만들어 수사권을 주는 것이었다. 고위공직자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공수처가 수사를 하여 검찰에 이첩해 기소하게 하고, 만약 검찰이 부당하게 기소를 하지 않으면 법원이 기소를 강제하도록 재정신청을 하게 하는 제도이다. 공수처가 수사 대상으로 삼는 고위공직자에는 검사들도 포함된다. 두 법안 모두 열심히 공을 들엿지만, 여야 정다오가 국회의원들이 협조해 주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무조건 반대했다. 검찰은 조직의 역량을 총동원해 국회에 로비를 했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 정치인이라 그런지, 행정자치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국회의원들이 미적미적 심의를 미루었다. 여당 국회의원들도 큰 노력을 하지않았다. 국회의원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된다는 것이 나쁜 영향을 미쳣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검경 수사권 조정도 공수처 설치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공수처 수사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시킨 것이 제일 큰 무제였다면, 국회의원을 빼고서라도 제도 개혁을 했어야 옳았다.

 검찰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가운데, 검찰은 임기 내내 청와대 참모들과 대통령의 친인척들, 후원자와 측근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추진한 대가로 생각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치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다른 문제였다.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정권이 바귀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 버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국세청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나는 대통령으로 일하는 동안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는 일에 국세청을 동원하지 않았다. 야당 정치인을 후원하는 기업이라고 해서 세무조사를 한 적도 없었다. 정치적 세무조사를 하지 못하게 했고 기업에 대한 정기세무조사나 특별세무조사도 정치적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따르게 했다. 국세청 스스로 이런 문화와 관행을 축적해 나가면 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착각이었다.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과 투명성을 보장하려는 뜻이 없을 때 국세청과 같은 관료조직은 하루아침에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청와대를 떠난 후 정치인 노무현을 후원했던 기업인들이 숱하게 특별세무조사를 당했다. 검찰 수사까지 받아 회사가 망하는 지경으로 가는 것도 보았다. 다르게 했더라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까? 내가 과연 잘못한 것일까? 민주주의 교과서가 말하는 그대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력을 운용하려 했던 나의 선택이 어리석었던 것일까? 아니다. 내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권력기관을 정치적으로 악용했더라도, 영구집권을 하지 못하는 한 언젠가는 마찬가지 수모를 겪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항변할 자격조차 없었을 것이다. 국세청과 검찰에게 당한 수모보다 더 아프고 슬픈 것은, 올바른 이상을 추구한 행위를 어리석은 짓으로 모욕하는 세태, 그런 현실을 보는 것이다.


p279

언론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책임의식 부족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상관없다. 그러나 사회적 공론의 장을 열고 공정한 토론의 장을 여는 책임을 팽개쳐서는 안 된다. 정부의 언론 정책을 비판할 때에도 최소한 사실에 관한 정부의 주장은 함께 보도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에 대해서까지 정부의주장을 봉쇄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말했더니, 그 말은 아예 소개도 해 주지 않았다.


p280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는 언론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언론의 부당한 특권,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의 유착을 반드시 해체해야 한다. 그래서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왜 언론과 싸워서 상황을 어렵게 만드느냐는 질책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맞서 싸우지 않았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내가 싸우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참여정부를 공정하게 대했을까? 그들은 내가 굴복하기를 원했다. 최소한의 원칙도 일관성도 없이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저항하지 않고 매달려 다녀서 귀여움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가장 막강한 권력은 언론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교체될 수도 없다.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 낸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렷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 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복잡한 인과관계를 가진 것인데, 언론이 효과가 없다고 하면 정말로 효과가 없어지게 된다. 대통령과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당과 시민단체의 주장도 언론이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외면해 버리면 아무 힘도 쓰지 못하게 된다.

 성숙한 민주사회의 언론이라면 민주적 토론과 의사결정을 하는 내부 구조가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있어야 스스로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는 위험을 제어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없으면 시민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권력이 ㅚㄴ다. 누구도 그런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다. 그 어떤 신념과 용기를 가진 정치인도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낼 수 없게 된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신문 독자인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려고 시도했다. 단순한 감정싸움이나 화풀이가 아니었다.

 어떤 분은 언론과 싸웠다고  질책했지만 다른 분들은 내가 언론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햇다고 질책했다. 상식적 통념이 현실과 다른 경우가 많은데 언론 개혁 문제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에게는 언론을 개혁할 수단이 없다. 그것은 대통령의 일이 아니다. 내가 대통령으로서 개혁하려 한 것은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의 관계였다. 나는 언론 권력과의 유착을 단절했다. 언론 권력의 부당한 특권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 자유를 탄압한 적은 결코 없었다.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보도 청구를 하거나 법원에 민사소송을 낸 것을 가지고 언론 탄압이라고 한 것은 그들 스스로도 믿지 않는 엄살에 불과하다. 내가 대통령이던 5년 동안 대한민국 언론인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언론 자유를 누렸다. 그들은 자기네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다 했다. 나는 다만, 언론 앞에ㅓㅅ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대통령이고자 했다. 그뿐이다.


p288

대연정 제안은 완전히 실패한 전략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불편했던 열린우리당과의 관계가 더 심하게 뒤틀렸고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까지 흔들리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ㅣ 여당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을 깨자고 하는 데까지 갔다. 결국 대연정 제안이 이런 행동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으니 실로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대연정을 해서라도 선거구제를 고치려고 욕심을 부렷던 이유만큼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어떤 문제는 적절한 시점이 되어 저절로 고쳐지기도 한다. 잠시 덮어 두었다가 적당한 시기에 전격적으로 해결할 수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사회적 의제로 말들어 공론을 일으키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이 있다. 건거제도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p289

1등만 살아남는 소선거구제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맏느는 지역대결 구도와 결합해 있는 한, 우리 정치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치가 발전하지 않는 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예가 없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제이다.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느 놈두 최종적으로는 정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영남에서는 모든 인재와 자원이 한나라당으로 몰린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으로 몰린다. 그 지역에서는 다른 정당을 통해서 국회에 진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반작용으로 충청도에서도 지역당이 끈질긴 생존력을 유지했다. 수도권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신의 출신 지역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정책 개발보다는 다른 지역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선거운동 방법이 된다. 정책의 차이가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감정싸움은 몸싸움으로 전환된다. 모든 정당에서 강경파가 발언권을 장악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불붙이기 어렵다 국회의원을 대폭 물갈이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경험한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 문제였다.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잇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독일식 권역별비례대표제가 제일 좋겠지만, 대도시에서 한 선거구에 여러명을 뽑고 작은 도시와 농촌에서는 지금처럼 하나만 뽑는 도농복합선거구제라도, 한나라당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차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291

2007년 12월 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530만 표차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런 대통령 선거는 처음 보았다. 엄청난 득표의 격차가 문제가 아니다. 선거 과정과 양상이 예전의 선거와 현저하게 달랐다. 지난 시기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권교체와 같은 민주주의 가치, 역사의 정통성, 권위주의 해체, 법치주의의 실현, 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 그런 것들이 주제가 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반듯한 사회'를 주장했고 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떳떳한 국민, 당당한 나라'와 같은 가치를 선거구호로 내걸고 선거전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것이 잘못되었다", "무엇을 바로잡고 발전시키겠다". "무엇을 개혁하겠다", 이런 것이 없었다. 국가의 주요 과제, 예컨대 남북관계나 평화 정책과 같은 문제들이 전혀 쟁점이 되지 않앗다. 토론회에서도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고, 그렇게 진행은 되었지만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 없이 다 그냥 넘어갔다. "경제 잘하는 솜씨 좋은 대통령이다" 이런 주장만 들렸다. 지도자의 도덕성 검증도 흐지부지 지나갔다.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와 역사의 중요 과제가 제출되고 국민과 함께 토론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새 정부가 그 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그런 과정이 아예 생략되고 말았다.

 선거에 나온 후보는 누구나 자기 자랑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정당과 후보의 정체성이다. 진보냐 보수냐, 이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진보 보수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이 원칙을 아는 정치인인인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여부다. 일관성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진보든 보수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왔다 갔다 해서 그 사람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경우에는 정체성 평가를 할 수가 없다. 아예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참패를 보면서 생각했다. 정치에도 인간적 신뢰가 있어야 한다. 노무현과 차별화를 하려면 차별화할 가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을 잘못했다고 지적하고 무엇 때문에 차별화해야겠다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차별화를 당해도 억울할 것이 없다. 정치에는 그런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기가 없으니까, 당신 지지율이 떨어졌으니 차별화해야 되겠다고 해서는 차별화하는 사람도 얻을 것이 없다. 이것은 또한 인간적인 배신이다. 정당도 정치인도 원칙과 신뢰성, 일관성이 있어야 믿음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기본이다.


p294

이들을 영입하려는 시도에 대해서 나는 여러 차례 부정적인 의견을 말했다.

 사실 인물만 보면 모두 능력 잇는 분들이다. 그분들을 개별적으로 비판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선고, 정치에서 무엇이 본질적으로 중요한지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 정치에 들어와서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정치가 아름다운 정책 경쟁인 것만은 아니다. 동시에 살벌한 권력 투쟁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정책 비전도 있어야 하지만 권력 투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리더십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런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권력투쟁의 현실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비전으로 타인을 설득하고 국민을 감동시키는 능력을 입증해 보여야, 비로소 국민이 그 사람을 지도자로 신뢰히ㅏ고 정치인들이 따르게 된다. 높은 대중 인지도나 호감도만 믿고 밥상이 다 차려지기를 기다리는 자세로는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그런점을 말하려고 햇다. 내가 그분들을 인격적으로 비판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17대 대통령 선거는 정당정치와 선거의 기본 원리가 다 무너진 선거였다. 노무현이 잘못해서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켰다는 비난을 숱하게 들었다. 대통령이 인기가 없으면 여당 후보가 불리하다는 상식에 비추어 옳은 비판이다. 미안하고 할 말이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내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패배는 쓰라리다. 그러나 원칙을 잃은 패배는 더욱 쓰라리다. 원칙 있는 승리가 가장 좋다. 원칙을 지키면서 지는 것과 원칙을 어기면서 이기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나은지는 상황과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서 패배하는 것이라는 데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 선거에는 사실상 여당 후보가 존재하지 않앗다. 참여정부의 공과를 다 책임지겠다는 후보가 아무도 없었다. 근거도 없는 '경제파탄론' 앞에서 먼저 반성한다고 말해 버렸으니 무엇을 가지고 선거를 할 것인가. 원칙을 지키면서 패배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을 잃고 패배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나는 이기든 지든, 매 순간 원칙을 지키면서 선거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p298

대통령은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가 걸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가 많다. 국민 여론이 찬반으로 격력하게 대립하는 문제도 더 미룰 수 없을 때는 어느 쪽이든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럴 때는 내가 의사결정권을 쥔 권력자라는 것을 실감한다. 이 권력의 이면에는 국민 누구에겐가 억울하고 불행한 일이 생기면 모두가 대통령 잘못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부담감이 놓여 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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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통령 자서전들이 한국 근현대사의 풍경을 돌아보기에, 올바른 정치 사회 경제에 관한 의식이나 도덕심을 키우기에 참 좋은 것같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로웠던 부분들을 발췌했음.

이외에도 재밌는 부분들이 많지만 일단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분들을 기록! 

굵직한 주제들을 쉽고 시원하게 서술한 책이니 직접 읽어보는 것 추천~~~ :)


김대중 자서전과 노무현 자서전만 후기를 쓰니 내가 마치 진보쪽..같지만 딱히 꼭 그렇진 않음.

이명박 전대통령 자서전도 읽어보려 했는데 완전 대필이라는 비추를 들어 안샀던 것 뿐.

여전히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또한 국민으로써 당연하게 박근혜 대통령이 잘해주셨으면 하는 바램.

가끔은 권력을 세습하는 것이 정말 옳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하는데,

정당한 민주주의의 절차-대선을 거쳐서 당선된 대통령을 두고 세습을 했다고 할순 없지 않나.....?

독재자의 딸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검증된 사람에게 정당한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보기에도 전혀 쉬운 인생은 아닌 것 같고.

어쨌거나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 또한 후에 정당히 평가되었으면 하는 마음임.


사실 동시대의 일은 제대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점점 더 믿을만한 정치인 의식있는 정치인을 찾아서 후원해야된다는 의식이 생기지만, 대체 누가 그런 사람인지 어떻게 판단해야할까?

특히 우리나라처럼 언론이 신뢰가 안 갈 경우. 그렇다고 SNS를 무작정 믿을 것인가? 

글쎄... 최소한의 사실확인여부를 할수 있는 절차나 신뢰가 없는 정보에 감정소모를 한다는게....

믿고 신뢰할수 있는 언론이 있었으면 좋겠음.


그럴려면 각 주체의 도덕심이나 의식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걸 많이 느끼게 했던, 

우리나라가 도덕적 정치적 성숙을 이루지 못해 지불하는 다양한 사회적비용을 생각하게 하는 책인듯.


Posted by logosles
MEMO/Books2013.08.23 01:02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었다. 지금 내가 써야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회고록을 써야한다. 영광이나 성공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시행착오와 좌절과 실패의 회고록이다.


내 인생에 성공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나를 지배하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들이다. 처음에는 다들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고 했다. 조금 지나자 "역사가 알아줄 것"이라는 덕담으로 바뀌었다. 임기 내내 경제 파탄, 민생 파탄,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사람들과 싸웠다. 나는 대통령을 했지만 정치적 소망을 하나도 성취하지 못했다. 정치를 함으로써 이루려 했던 목표에 비추어 보면 처절하게 실패한 사람이다. 정치인으로서는 실패했지만 시민으로 성공해 그 실패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대통령을 할 때보다 더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어떤 기회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p35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에서

운명이다 (양장)
국내도서
저자 : 노무현
출판 : 돌베개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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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내용하고는 시작부터 많이 다르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뭐 이리 흉흉한 일이 일어나나 싶었다.

이제 다시는 어떤 기회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니.... 죽기 전에 이미 죽음에 이르는 마음의 병에 걸린다는게 이런건가..?

역시 본인의 고통은 본인의 것인지......................나같이 전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도 못하는 국민도 있는데...

하여간 이 책을 읽으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북디자인 좋음. 절망을 논하면서 이미지컬러를 병아리색으로 잡은 것은 탁월하다. 

하드커버인데도 가벼운 것도 마음에 들고 글씨도 큼직해서 빼곡하던 김대중자서전에 비해 읽기 좋음. 

글의 양은 김대중자서전에 비하면 1/3 혹은 1/4 정도 될거 같고 다 읽고나면 영구소장을 결심할 것 같다.

Posted by logosles
MEMO/Books2013.04.03 01:52


김대중 자서전 2 (보급판)
국내도서
저자 : 김대중
출판 : 삼인 201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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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후 퇴임까지의 행보를 세세하게 기록한 책.

IMF와같은 위기시에 해외에서 무척 존경받는 지도자가 대통령이었던 덕분에 많은 해외자본유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참 행운이란 걸 느꼈다.

대통령 업무의 많은 부분이 인사인 듯 누굴 임며했다 라는 얘기가 1/5정도는 차지했던 것 같다. 어찌나 자주 바뀌는지 모른다. 

막연히 대통령이라는게... 뭘 하는지 잘 몰랐지만 이 책을 읽으며 모든 면에서 매우 하드한 직업이란 걸 느꼈다. 책임감도 막중하고 중요한 결정앞에서 무섭도록 고독하고... 그리고 바쁘다!! 몹시도 바쁘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농민들을 위한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한탄한 부분과 IMF 때 실업한 중산층이 급격하게 빈곤층으로 전락했으나 다시는 중산층이 되지 못했다고 회고한 부분...

위기가 기회다-같은 희망적인 얘기만 하는 성공학-희망전도서하곤 사뭇 다르게 통계적사실을 덤덤하게 서술했을 뿐이나 마음 아파하는 것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선 강대국에 둘러쌓여있는 우리나라에게 있어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하며 신신당부하신 것도 인상적.... 


대사관 순간의 기록
국내도서
저자 : / 최경은역
출판 : 매경출판(매일경제신문사) 201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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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에서 발간된 -한미외교비사의 현장들- 대사관 순간의 기록 이란 책으로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납치되었을 때 주한미국 필립 하비브 대사가 발 빠르게 정보수집하여 박정희 정권에 압력을 가해 간발의 차이로 구했던 것을 김대중 자서전 1권에서 읽고 외교관이란 직업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되어 읽은 책.


한국 근현대사를 두루두루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같은사건 다른시각을 퍼즐맞추는 느낌으로 읽는 재미가 솔솔했다.

주한미국대사와 주미한국대사의 인터뷰방식으로 편집되어있음. 책장을 넘기며 깜놀했던 것은 처음 등장한 두 명의 주한미대사가 CIA출신이어서! CIA라고하면 미드에 나오는 그 피도 눈물도 없고, 이름도 소속도 가족도 없고, 목적앞에선 원칙이고 뭐고 없는 듯한 그 CIA....?? 란 느낌으로 ...이건 실명맞은가 싶고 어안이 벙벙....


민주화 과정에 있었던 대소사와 함께 주로 대북문제가 많이 언급됨.

이 책을 읽어보면 정말 여러번의 전쟁위기가 있었고, (지금도-_-)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쩔수 없이 안보문제에 너무나 둔감해진 것 같다. 선택적 무지인 듯.

대북문제에 있어서 미국이 주체일 수는 없으며, 분단국가에서 통일과 안보에대한 확고한비전이 없는 정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되는지 느껴진다.

또한 무지가 음모론을 낳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국내도서
저자 : 김대중
출판 : 김영사 200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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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도 대선에 패하고 은퇴했던 시기에 쓴 책.

97년도 대선에 때, 더이상 안한다며!! 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 책을 읽으며 은퇴당시에는 정말로 은퇴할 생각으로 은퇴하셨었다는 것을 느꼈다.

김대중 자서전 1편과 중복되는 얘기가 어느정도 있기는 하지만 마음가짐이나 삶의 태도 가치관등 좀더 디테일하게 접근한 부분도 있어서 만족스러웠음.

글씨도 크고 비교적 읽기 편하고 쉬운 책.



동행 - 이희호 자서전
국내도서
저자 : 이희호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0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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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대통령의 밑거름이 되기로 결심한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일제강점기에 이화여대+미국유학+서울대... 엘리트 여성운동가였던 이희호여사가 당시 정치 4수생으로 아무것도 없이 셋방에 노모와 심장병을 앓는 여동생, 사춘기 전처 아들 둘을 둔 전처와 사별한 김대중 야당 정치가와 결혼하게된 계기가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인데 그 부분을 딱히 심도있게 다루지는 않음.

학력만 보고 엄청 유복한 것 같았으나, 유복하기는 했으나 어머니가 중학교때 돌아가셔서 그때부터 인생이 쉽지 않았던 것. 유학은 장학금으로 다녀온 것...등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주위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주위의 예측대로 몹시도 고생한 것.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탓에 더욱 고립무원이었던 것.

김대중대통령과 같은 시국을 읽는 센스나 뚜렷한 비젼 등은 크게 없었고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이 좀 의외였고. 초년기엔 범인 특유의 인생에 대한 불안함과 답답함 등이 느껴졌다...


전혀 의도치 않게 이 책을 읽으면서는 무엇보다도 독재에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아마도 김대중대통령보다도 그 옆에서 묵묵히 내조했던 이희호 여사와 비서진 등이 더 고생했기 때문 아닐까.

고문에, 거짓증언 강요에, 사업을 망하게하고, 면죄를 사형집행하는 인권유린이 불과 몇년 전까지 줄기차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큰 화를 당하니 누구한테 부탁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는 얘기...

대통령 당선되어 미행이 경호로 바뀌는 순간까지 평생 미행, 도청당한 것....

가족과 비서진 지인들이 줄줄이 고문당한 것.....


“나는 헌신하되 간섭하지 않고, 지배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기다리는 아내였다” 고 회고하시듯,

여성운동가란 말이 무색해질만큼 헌신적이고 한발자국 물러나있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보여주신 것이 참 신기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했던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여권신장에 적극적이었던 계기중 하나는 물론 약자를 대변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도 있었겠지만 이희호여사의 헌신적인 내조를 너무나 잘 알기때문이었으리라 믿는다김대중 대통령 지분 40%는 이희호여사란 말이 있듯 뚜렷한 비젼은 없었을지언정 헌신함으로써, 여성의 인권 을 개선하는데 큰 기여를 하셨다.


불과 몇년 전까지 여성들에겐 제대로 된 상속권도 없었고, 이혼하면 자녀에대한 친권도 주장할 수 없었고, 법적으로 아버지나 남편뿐 아니라 남자형제에게까지 종속된 존재였는데....가부장 문화속에서 심한 차별과 착취를 당하며 살면서도 근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질 않으니 그런 사실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는 현실이 영 찜찜하다....


아무튼  개재하신 사진중에 증손자손녀까지 일가를 일군 사진은 정말 훈훈하더라는..^_^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vs김영삼
국내도서
저자 : 이동형
출판 : 왕의서재 201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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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는중.ㅋ

라이벌-이라고하면 난 사스케랑 나루토가 생각나는데ㅋ 사스케랑 나루토를 생각하며 DJ와 YS를 생각하니 ㅋ 흥미가 치솟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도 한국 근현대사를 두루두루 다루는데, 김대중 자서전 이나 대사관 순간의 기록만큼 고증?이 뙇! 되어있지도 않고 문체가 통신어체인게 좀 거슬리기도 하지만 한국 정치사 뒷담화같은 부분도 많이 다루고 있어서 재밌는 듯.

이 책을 읽으면서는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급호감이 갔다. 아무튼 어린시절 DJ와 YS에 대한 막연한 인상은-DJ똑똑하지만 차가운 원칙주의자 YS멍청하지만 의리있는...뭐 그 정도ㅋ 였는데 이 책을 읽으며 YS의 매력이 어떤 건지 좀 알게 된다고나 할까.... 원래는 블로그에 집필한 글을 출판한 것이라던데 출처라던가 연설문이라던가 좀더 잘 고증해줬으면! 하는 점이 아쉽긴하지만... 재밌게 접근하긴 좋은 듯하다.


그리고 이 모든 책중 가장 재밌었고 감동적이었던 건 누가 뭐래도 한편의 드라마같은 이 책....


김대중 자서전 1 (보급판)
국내도서
저자 : 김대중
출판 : 삼인 201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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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 [MEMO/Books] - [도서리뷰] 김대중 자서전 1/ 김대중/ 삼인


Posted by logosles
MEMO/Books2013.01.09 09:00


한국경제,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
국내도서>경제경영
저자 : 이지효
출판 : 북포스 20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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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산업에서 과거의 통념은 'First Mover Advantage'로 대표된다. 기술을 먼저 개발해 시장에 먼저 진입한 업체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은 오히려 위험이 높은 초기단계는 기술력을 갖춘 미국과 일본기업들의 노력을 지켜보다가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해가는 시점에서 기존 기업들의 허를 찌르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 하고 시장을 장악해버리는 전략을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하게 구사하고 있다.


-본문중에서-

*삼성의 1.5세대 전략을 이렇게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한 글은 처음 봐서 발췌.



좋은 책. 세계 경제, 산업과 더불어 우리나라 산업의 과거와 미래의 가능성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전략으로 살아남았는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예고되고 어떤 곳에 기회가 있을지...?

사활을 걸고 싸우는 격동의 세계에 살고 있고 변화하는 환경에 재 때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란 걸 느낀다.


2008년도 정도까지 분석되어 있는데 이제 2013년이니까.....원한다!!! 2권!!!


 그리고 저자님(마이티님) 블로그


Posted by logos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