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2005. 7. 25. 08:49ㆍGIFT
Timi님의 **Timidy's Timid Blog**에서 운 좋게 10000hit을 밟아 드렸던 리퀘가 드디어 완결 되었습니다.♡
진심(上)
노을이 지면을 붉게 물들이는 선선한 저녁에, 젊은 제다이는 홀로 템플에 남아 있었다. 파다완 시절때보다 꽤 자라 이마를 덮기 시작한 금빛 머리카락이 그의 초록색 눈동자와 굉장히 잘 어울렸지만, 본인은 영 탐탁치 않은듯 자꾸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곤 했다.
"마스터 오비완!"
그 옆을 지나가던 영링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거리낌없는 태도에 오비완이라 불린 남자도 부드럽게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편안한 미소는 영링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영링들만의 survey에서 마스터로 두고 싶은 제다이 일등으로 당당히 뽑혔었고 다른 몇몇 비밀스런(?) 설문에서도 일등을 차지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영링들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들로 몇몇 영링은 이 자상한 제다이의 파다완 자리를 노리고 있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반응이 시큰둥한것이, 이 제다이는 그런쪽으로는 왠지 모르게 무심해보였다. 그건 아마도, 그가 제다이 나이트가 된지 얼마 되지가 않아서일까.
이런저런 음음한 생각들을 하며 영링들이 그의 옆을 지나가자마자, 놀랍게도 밝아보이기만 했던 오비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어둠으로 인해 그늘진 그의 얼굴은 피곤하고 지쳐보였다. 생각에 잠긴 체 입술을 지긋이 깨물던 그는 이내 고개를 떨구며 길고 고단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아나킨. 아나킨 스카이워커"
그녀석이 이렇게 신경쓰일 존재라고는, 젊은 제다이 나이트, 오비완 케노비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러니까 한 시간 전.
"오비완. 이번은 조금 심했네"
"그렇지만, 마스터! 이번엔 제 로브도 찢어놓았습니다!! 저번주에도 저 아이는-"
답답함과 억울함에 말문이 막힘을 느끼며, 오비완은 콰이곤의 등 뒤에서 그의 로브자락을 꽉 잡고 훌쩍거리는 아나킨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겁먹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저 소년은, 분명 오비완이 아는 '그' 소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오비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무심한 콰이곤은 아나킨을 가엽게 그리고 자애로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소년의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어 주는 것 아닌가! 오비완도 별로 받지 못한 다정함으로!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오비완에게 콰이곤은 미심쩍다는 듯 입을 열었다.
"흠흠. 그러니까, 오비완. 네 주장에 따르자면 이 여리고 섬세한 아이가 매번 너의 옷이나 생필품을 뺏어가고 그런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마스터! 그리고 그리고 저를 마치 장난감 취급하듯 고약한 장난을 치는데 그것이 정말로…"
"마스터 콰이곤"
훌쩍이던 아나킨이 갑자기 진중한 목소리로 콰이곤을 불렀다. 오비완에게 무성의하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던 콰이곤의 얼굴이 돌아가자, 오비완은 소년이 고의적으로-그가 느끼기에- 자신의 말을 끊었음을 깨달았다.
윽. 오비완은 패배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 녀석. 콰이곤이 미소지으며 소년을 내려다보자 소년은 눈가를 슥 닦고는 어른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마스터 케노비께서 저를, 싫어하시나 봅니다, 마스터 콰이곤. 괜찮습니다- 저는 견딜 수 있어요"
메, 메야? 오비완의 입이 충격으로 떡 벌어지는 사이, 콰이곤은 대단히 감동받은 표정으로 아나킨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이리도 어른스러울수가'하는 심정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것을 느끼고 오비완은 절망했다.
"마, 마스터어! 당신은 속고 있어요!"
"오비완. 정말 계속 이럴건가? 아나킨을 맞아들인 것에 불만이 있다면 나한테 하라고 내가 몇번이나 말해두지 않았느냐! 널 그런 인물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실망이구나"
실망이구나
실망이구나
실망이구나-..
"마, 마스터…"
"오늘 일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오늘은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명상이 필요할 것 같구나, 오비완 케노비"
그리고 냉정하게 로브를 펄럭이며 걸어나가버리는 마스터에 눈물 찔끔, 그 마스터 옆에서 오비완을 향해 혀를 낼름 내미는 아나킨에 분노 폭발하는 가련한 제다이 오비완이었다.
.
.
.
"하아-"
길고 암울한 회상에서 돌아와, 오비완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저 맹랑한 꼬마가 콰이곤 앞에서는 어찌나 싹싹하게 구는지 때?론 그 소년이 자신이 아는 '그' 아나킨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나 콰이곤을 종종대며 따라갈때 자신을 향해 씩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인다거나 아까처럼 혀를 내민다거나 하는 짓거리는 분명 자신을 괴롭히는데 한이 맺힌 '그' 아나킨이었다.
콰이곤은 분명 몰랐다. 저 아나킨이 어떤 짓을 자신에게 하는지. 열살밖에 되지 않은, 단지 엄마를 그리워하는 순진한 소년이라고 생각했던 소년이 처음으로 그의 방을 침입했을때 오비완은 처음으로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
-아, 아나킨?
잠결에 갑자기 묵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을때, 그는 코앞에서 싱긋 미소짓고 있는 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은 분명 락이 걸려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라는 생각도 할 틈도 없이 그는 소년의 손에 들린 그것을 발견했다. 거뭇거뭇하니 흔들거리는.....
-그건 내 로브 아니니? 아나킨, 너 대체…
-내가 가질꺼야.
-뭐, 뭐라고?!
아무말없이 로브에 코를 박고 강아지마냥 킁킁대는 소년의 행동에 기가 막혔다. 그리고 로브사이에서 의미 모를 열기로 반짝이며 휘어지는 눈동자에 오비완은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린 열살의 소년이 이 소년이 맞는 것일까.
-아나킨. 저기, 로브는 마스터에게 말하면 언제든지 주실거야. 게다가 그 로브는 네가 입기엔 조금 크지 않,
-시끄러!! 내가 작다는 거야?!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버럭 화를 내길래, 그것이 그렇게 화낼 만한 것인가 생각했다. 나이차가 15살이상 나는데 키고 덩치고 차이가 나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나 소년이 너무 진지하게 화를 내는 터라 오비완은 어색하게 웃으며 소년을 달래보고자 했다.
-그러니까, 아직 열살이잖니, 아나킨은? 이제 쑥쑥 클거,
-흥, 콰이곤보다 작은 주제에!
크윽- 순간 오비완의 평안을 유지하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제대로 찔렸다. 이제 육십대를 향해 돌진해가는, 한때 그의 스승이었던 콰이곤은 여전히 풍채좋고 훌륭한 몸매인데 비해, 이십대 후반에 들어선 오비완은 아직도 또래에 비해 작고 빈약한 몸매에 속했다.
-후우...하, 하하하. 그건 조금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아나킨.
-불만있음 키 커.
-…그게 생각처럼 되면 얼마나 좋겠니.
-뭐야, 무능하네- 당신.
차갑게 내뱉고는, 씩 웃더니 갑자기 무릎으로 오비완의 복부를 콱 찍어내리는것이 아닌가. 컥! 순간적인 공격에 숨이 탁 막힌 오비완을 고소하게 바라보며 소년은 팔짝 침대에서 뛰어내려갔다.
-크윽...아나킨!!
-그럼, 로브는 고맙게 받겠어. 오.비.완.케.노.비.
그러니까 반말하지 말란말이다-! 라는 말은 통증으로 인해 입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묻혀버리고 오비완은 그저 손을 바르르 떨며 유유히 사라지는 아나킨을 노려볼 수 밖에 없었다.
소년의 짓궂은 장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다음 침입때는 라이트세이버를 교묘히 손대놔서 핑크빛 광선이 뿜어져나온다거나-반트가 굉장히 좋아했다- 광선이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휘어져서 카운슬의 눈치를 받지를 않나, 그 다음에는 그의 물건들을 아예 숨겨버리지를 않나, 어쩔때는 아예 대놓고 다가와서 입술이나 귓볼을 깨무는데, 아주 이력이 난 오비완이었다.
"아"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은 어둠이 빛을 거의 다 집어삼켜, 좀 전의 아름다웠던 노을은 온데간데 없었다. 어둠을 뿌리는 하늘에 오비완은 그제서야 템플을 벗어날 생각을 했다. 천천히 일어나 단아한 몸놀림으로 로브를 털고 품위있게 계단을 내려가며 그는 생각했다.
마스터 콰이곤은 그 소년을 the chosen one으로써 완벽하게 신뢰하고 있다. 그런그에게 저 소년이 저지르는 일들을 말해보았자 신뢰를 잃는 건 분명 자신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원통하게도- 소년의 짓궂은 장난의 범위는 오비완, 단 하나에게 국한되고 있었다.
또다시 떠오르는 소년의 만행에 주먹을 발끈 쥐며, 오비완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래, 나에게도 방법이 있다 이거야!
진심(中)
오비완이 선택한 방법은 단순명료했다. 그건 소년을 그냥 '무시' 해버리는 것이었다. 어떤 장난을 치든 4가지없게 말을 하든 무한한 포스의 애정으로 무시해주는 것. 그가 아무리 심각한 장난꾸러기라도 반응이 없는데 그런 장난질을 계속 할 리가 없으리라. 오비완은 믿었다. 일단 마음을 정하자 그의 행동은 나는듯이 빨라졌다.
일단 콰이곤에게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이 중요했다. 어쨌든 전 마스터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오비완에게 있어 누구보다도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날이 밝자마자 콰이곤을 찾았다. 아나킨이 방해할 수 없도록 그가 자는 시간을 신중하게 골라 방문한 것은 다행히 효과가 있었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오비완에 콰이곤은 예전 마스터-파다완 시절처럼 부드럽게 그를 도닥여주었다.
-아나킨은 섬세한 아이다. 앞으로 나를 도와 잘 돌봐주었으면 좋겠구나.
…물론 그 말에는 찬성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날 오후, 오비완은 콰이곤과 아나킨의 대련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딱히 파다완이 있는것도 아니었고 홀로 수련하지 않는 한 한가한 그라 콰이곤의 요청을 거절 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제다이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한몸에 받는 요다가 그들을 찾아왔다. 아직도 대련에 열중하는 두 사람을 보며 오비완과 몇마디 담소를 나눈 요다가 콰이곤을 만나기를 청하자, 오비완은 재빨리 그들의 대련을 중단시켰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건을 건네주는 오비완에게 콰이곤은 씩 웃으며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비완. 아나킨을 좀 봐주겠니?"
눈에 힘을 주고 물어오는 콰이곤에 감히 거절을 못하고, 오비완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구나- 콰이곤의 따뜻한 손이 뺨을 쓰다듬어 줌에 가슴 덜컹하고, 뒤에서 목도를 휘두르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아나킨에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콰이곤이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는 요다에게 가버리자, 오비완과 아나킨은 한동안 서로를 향해 못마땅한 시선만을 교환했다. 그러나 곧 그 침묵까지도 견디기가 힘들어 오비완은 가볍게 목도를 들어올렸다. "대련을 하자꾸나" 침착하게 말하고 오비완이 목도를 붕붕 휘둘러보는데, 소년이 갑자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헤?"
갑자기 목도를 내팽겨치고 자신에게 두두두두 달려오는 소년에 흠칫하는데, 콰이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이 냅다 오비완 옷의 치마[?]부분을 걷어올리는 게 아닌가!
"우앗?!"
"아이스께끼-"
그리고 능글맞게 씩 웃는 소년에 순간 무시고 뭐고 오비완의 포스가 폭발할, 뻔했다. 도대체 이런건 어디서 배운거냐 이 머리에 피도 안마른 초딩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의 포스를 간신히 진정시키고나서야-요즘 들어 인내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그였다- 오비완은 소년을 무시한다는 자신의 최우선목적을 상기시켰다. 그는 거칠어지려는 숨을 겨우 가다듬고 표정을 싹 바꾸었다.
"...어"
어린 아나킨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은 뭔가 이상했다. 매번 장난을 걸때마다 얼굴을 붉히고 어린얘마냥 뭐라뭐라 귀엽게 반응해오던 오비완이었는데 오늘은 뭔가 묘하다. 짓궂게 옷을 들추고나서 터져나올 반응을 기다리는데, 머리 꼭대기가 섬뜩할 정도로 차갑게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결국 고개를 들고 오비완을 살피려 하는 아나킨에게, 기다렸다는 듯 오비완의 냉정한 훈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린얘처럼 굴지 말아라. 제다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제다이처럼 바르고 의젓하게 행동해. 넌, 아직도 예전의 너처럼 철없는 아이같이 굴 생각이냐, 아나킨 스카이워커"
"예, 예전의 나라니…!"
"그리고 난 제다이 나이트다. 예의를 갖추어라. 아무리 네가 마스터의 파다완이라도 계속 이렇게 행동할 거라면 마스터 요다에게 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순간 소년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것이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인한 것임을 알아차린 오비완은 속으로 실실 웃었다. 요놈, 약오르지? 그런 그의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난 것일까, 희색으로 아나킨을 바라보던 오비완을 향해, 아나킨이 이를 악물더니 벌쩍 짧은 다리를 쳐들었다...
퍼억-
"크우우욱!!!!!!"
중요한 곳에 제대로 꽃힌 아나킨의 앞차기에 오비완은 하늘이 노래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그대로 바닥으로 고공낙하했다. 거품을 입에 물고 처참히 쓰러져 부르르 떠는 오비완을 아나킨은 씩씩거리며 노려보았다.
"우으으...아, 아나키인...네 이 노옴..."
"씨이, 당신 정말 미워!!!!"
뜻밖에도, 아나킨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고통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오비완의 시야에 정확히 박혀들어왔다. 어...어째서? 이제는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를 의아해 하며 본능적으로 오비완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처입은 것인가?
평소 자기 말이라곤 완전 길가는 개소리마냥 완전 무시해버리던 소년의 이런 반응은 그에게 너무나도 생소했다. 내가...그렇게 심한 잘못이라도 한거야?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아아, 멀미가 나는 것같아-역시 날아다니는 것따윈 질색이야 정말이지 잘 날아다니는 꼬맹이따윈 싫다고- 자신이 무슨소리하는지도 알지 못한체, 오비완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진심 (下)
오비완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마치 독수리처럼 날개를 달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하늘을 날고 있었는데, 눈을 깜박하는 사이 그는 스피더에 타고 미칠듯이 하늘을 질주하고 있었다. 너무 빨라! 인간이 도저히 견뎌낼수 없는 그 스피드에 오비완은 스피더를 멈추려다, 그가 이 스피더를 운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본능적으로 돌아본 그의 옆자리에는 한 매력적인 고수머리를 가진 청년이 신나게 웃으며 스피더를 몰아대고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청년이 오비완의 시선을 알아챈 것인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 모습에 가슴이 시리다. 뭐라 말을 해주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 오비완은 고통스러워했다. 스피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눈조차 뜨기 힘겨움을 느끼며 오비완은 청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나킨-...
"오비완...?"
오른손이 무언가에 단단히 붙잡혀 있는 것을 느끼며 오비완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처음에는 뿌옇기만 했던 시야가 금방 선명해지는 것을 느끼고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꿈...이었나. 짙은 갈색의 고수머리의 청년. 기쁜 듯 슬픈 듯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마지막에, 나는 뭐라고 그를 불렀지...
"오비완!"
거듭된 소년의 부름이 그를 잔념에서 끌어냈다. 그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제서야 오비완은 자기 오른손을 누군가가 계속 쥐고 있었다는 것과,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을 쓰러지게 만든 장본인, 아나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나킨?"
정신을 잃었을때와 마찬가지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년이 그의 손을 절대 놓지않겠다는 듯 굳건히 잡고 있었다. 오비완과 눈이 마주치자, 아나킨은 안심한 듯 한숨을 쉬더니,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아나킨"
"오비완, 와앙!!"
결국 참고 참았던 듯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아나킨이 그에게 안겨들었다. 어어라?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오비완이 이도저도 못하는 사이 아나킨은 오비완의 품에 파고들어 서럽게 울어댔다.
"흑, 흐윽...우에엥...난, 난 오비가 죽었을까봐...우아앙!!"
"아아아나킨;? 흠흠. 죽지 않았으니 걱정 말거라"
물론 죽을만큼 아프긴 했지만.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아나킨이 가엾기도 하고, 소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오비완은 난생 처음으로 아나킨이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이리 만들어놓고 병주고 약주는 식으로 울어젖히는 건 분명 약오르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자신을 걱정해서 울고 있는 소년이 은근히 감동을 준다는 건 사실이었다.
"자자, 아나킨. 그만, 뚝!"
"흑흑...미안, 미안해요, 오비완"
"응?"
고개를 들지 않은체 아나킨은 막무가내로 사과했다.
"가져간 것들도 다 돌려줄게...흑, 그러니까, 흐윽, 죽지 마. 내가 찢은 거랑 고장낸 거, 흑, 마스터한테 다 혼났어. 그러니까, 내가 다 고칠거야"
"아나킨..."
"오비가 좋아. 오비가 좋아... 흑, 자꾸만 장난치고 싶어서- 맨날 무뚝뚝하지만 나를 봐주긴 하니까. 그러니까..."
눈물에 얼룩져 팅팅 부었을 게 뻔한 소년의 얼굴을 마주보고 싶었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허리에 두른 팔이 단단하다. 창피하기도 할 것이고 서럽기도 했나보다. 차오르는 연민의 감정에 결국 아나킨이 울든 매달리든 가만히 내버려두는 길을 택하며 오비완은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짜식, 내가 좋아서 그렇게 짓궂게 굴었던 게냐?
그러니까 요 녀석도 내면은 착한 거였다니까.
아나킨의 태도가 순식간에 싹 돌아선 것이 조금 의아했지만 오비완은 지금의 이 평화가 만족스러워 사소한 것 따윈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오비완의 허리에 매달린 아나킨의 입꼬리가 빙글 말려올라간 사실을 그는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음 날, 아나킨은 그동안 당당히[!] 집어갔던 여러 오비완의 소집품들을 말끔한 상태로 오비완에게 돌려주었다. 보송보송하게 세탁까지 된 자신의 로브를 감격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오비완은 아나킨을 찐하게 껴안아주었다.
"아나킨! 너무나도 착하구나! 마스터가 잘 가르치셨어. 역시 넌 츄즌-원이었어!"
"헤헤헤. 좋아?"
"그럼! 아나킨. 나는 너무 기쁘단다. 네가 이렇게 착한 아이라는 것을 왜 진작에 깨닫지 못한걸까!...내가 네게 너무 심했구나. 나를 용서해주겠니?"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오비완의 정중한 태도에 아나킨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종종거리며 다가와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하는 소년이 너무나도 귀여워, 오비완은 아나킨과 마주보고 환하게 웃었다.
"있잖아. 나…오비가 내 마스터였음 좋겠어"
은근슬쩍 반말을 고치지않는 아나킨이었지만 뜻밖의 아나킨의 호의에 겨운 오비완은 조금도 그것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스터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오비완에게 아나킨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체 중얼거렸다.
"마스터 콰이곤, 오늘 오비보러 나올때까지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나쁜 녀석이라고 계속 혼냈단 말야. 잘못한 거 아는데, 자꾸만 자꾸만 혼내니까..혼내니까....흐에엥"
"아, 아나킨! 울지 말거라!!"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소년에 오비완의 가슴은 연민과 동정으로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마스터가 아나킨에게 했을 모습이 머릿속으로 플레이가 되면서 오비완의 눈동자는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스터 콰이곤!! 어떻게 이런 어린얘한테 그럴 수 있는거죠!!
정말 실망이야!!!!!
덧)
한 시간 후, 영문모르고 메디테이션을 하던 콰이곤은 난데없이 들이닥친 오비완에게 올바른 육아양육 상식에 대해 길고도 긴 강좌를 들어야했다. (어째서?!!)
-----------------------------------The End--------------------------------
그리고 정확히 10년 후, 제다이 나이트가 된 아나킨은 당당하게 오비완의 방으로 걸어들어갔고,
그 방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입꼬리 올리며 수상하게 웃는 꼬마아나킨만이 안다는
제다이의 전설이 있으니.....(무슨소리냐, 나)
그건 그렇고 오비완 둔팅이.
아나킨이 고백을 하든 입술을 들이대든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생각이 없습니다.
정말, 10년후에 어쩌려고[한숨]
흠흠; 그럼, 이르키르님;ㅁ;
어쨌든 끝입니다 허허허허허 죄송해요 민폐끼쳐드렸습니다
상콤하게 도주합니다.
진심(上)
노을이 지면을 붉게 물들이는 선선한 저녁에, 젊은 제다이는 홀로 템플에 남아 있었다. 파다완 시절때보다 꽤 자라 이마를 덮기 시작한 금빛 머리카락이 그의 초록색 눈동자와 굉장히 잘 어울렸지만, 본인은 영 탐탁치 않은듯 자꾸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곤 했다.
"마스터 오비완!"
그 옆을 지나가던 영링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거리낌없는 태도에 오비완이라 불린 남자도 부드럽게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편안한 미소는 영링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영링들만의 survey에서 마스터로 두고 싶은 제다이 일등으로 당당히 뽑혔었고 다른 몇몇 비밀스런(?) 설문에서도 일등을 차지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영링들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들로 몇몇 영링은 이 자상한 제다이의 파다완 자리를 노리고 있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반응이 시큰둥한것이, 이 제다이는 그런쪽으로는 왠지 모르게 무심해보였다. 그건 아마도, 그가 제다이 나이트가 된지 얼마 되지가 않아서일까.
이런저런 음음한 생각들을 하며 영링들이 그의 옆을 지나가자마자, 놀랍게도 밝아보이기만 했던 오비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어둠으로 인해 그늘진 그의 얼굴은 피곤하고 지쳐보였다. 생각에 잠긴 체 입술을 지긋이 깨물던 그는 이내 고개를 떨구며 길고 고단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아나킨. 아나킨 스카이워커"
그녀석이 이렇게 신경쓰일 존재라고는, 젊은 제다이 나이트, 오비완 케노비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러니까 한 시간 전.
"오비완. 이번은 조금 심했네"
"그렇지만, 마스터! 이번엔 제 로브도 찢어놓았습니다!! 저번주에도 저 아이는-"
답답함과 억울함에 말문이 막힘을 느끼며, 오비완은 콰이곤의 등 뒤에서 그의 로브자락을 꽉 잡고 훌쩍거리는 아나킨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겁먹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저 소년은, 분명 오비완이 아는 '그' 소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오비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무심한 콰이곤은 아나킨을 가엽게 그리고 자애로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소년의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어 주는 것 아닌가! 오비완도 별로 받지 못한 다정함으로!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오비완에게 콰이곤은 미심쩍다는 듯 입을 열었다.
"흠흠. 그러니까, 오비완. 네 주장에 따르자면 이 여리고 섬세한 아이가 매번 너의 옷이나 생필품을 뺏어가고 그런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마스터! 그리고 그리고 저를 마치 장난감 취급하듯 고약한 장난을 치는데 그것이 정말로…"
"마스터 콰이곤"
훌쩍이던 아나킨이 갑자기 진중한 목소리로 콰이곤을 불렀다. 오비완에게 무성의하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던 콰이곤의 얼굴이 돌아가자, 오비완은 소년이 고의적으로-그가 느끼기에- 자신의 말을 끊었음을 깨달았다.
윽. 오비완은 패배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 녀석. 콰이곤이 미소지으며 소년을 내려다보자 소년은 눈가를 슥 닦고는 어른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아무래도 마스터 케노비께서 저를, 싫어하시나 봅니다, 마스터 콰이곤. 괜찮습니다- 저는 견딜 수 있어요"
메, 메야? 오비완의 입이 충격으로 떡 벌어지는 사이, 콰이곤은 대단히 감동받은 표정으로 아나킨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이리도 어른스러울수가'하는 심정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것을 느끼고 오비완은 절망했다.
"마, 마스터어! 당신은 속고 있어요!"
"오비완. 정말 계속 이럴건가? 아나킨을 맞아들인 것에 불만이 있다면 나한테 하라고 내가 몇번이나 말해두지 않았느냐! 널 그런 인물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실망이구나"
실망이구나
실망이구나
실망이구나-..
"마, 마스터…"
"오늘 일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오늘은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명상이 필요할 것 같구나, 오비완 케노비"
그리고 냉정하게 로브를 펄럭이며 걸어나가버리는 마스터에 눈물 찔끔, 그 마스터 옆에서 오비완을 향해 혀를 낼름 내미는 아나킨에 분노 폭발하는 가련한 제다이 오비완이었다.
.
.
.
"하아-"
길고 암울한 회상에서 돌아와, 오비완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저 맹랑한 꼬마가 콰이곤 앞에서는 어찌나 싹싹하게 구는지 때?론 그 소년이 자신이 아는 '그' 아나킨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나 콰이곤을 종종대며 따라갈때 자신을 향해 씩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인다거나 아까처럼 혀를 내민다거나 하는 짓거리는 분명 자신을 괴롭히는데 한이 맺힌 '그' 아나킨이었다.
콰이곤은 분명 몰랐다. 저 아나킨이 어떤 짓을 자신에게 하는지. 열살밖에 되지 않은, 단지 엄마를 그리워하는 순진한 소년이라고 생각했던 소년이 처음으로 그의 방을 침입했을때 오비완은 처음으로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
-아, 아나킨?
잠결에 갑자기 묵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을때, 그는 코앞에서 싱긋 미소짓고 있는 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은 분명 락이 걸려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라는 생각도 할 틈도 없이 그는 소년의 손에 들린 그것을 발견했다. 거뭇거뭇하니 흔들거리는.....
-그건 내 로브 아니니? 아나킨, 너 대체…
-내가 가질꺼야.
-뭐, 뭐라고?!
아무말없이 로브에 코를 박고 강아지마냥 킁킁대는 소년의 행동에 기가 막혔다. 그리고 로브사이에서 의미 모를 열기로 반짝이며 휘어지는 눈동자에 오비완은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린 열살의 소년이 이 소년이 맞는 것일까.
-아나킨. 저기, 로브는 마스터에게 말하면 언제든지 주실거야. 게다가 그 로브는 네가 입기엔 조금 크지 않,
-시끄러!! 내가 작다는 거야?!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버럭 화를 내길래, 그것이 그렇게 화낼 만한 것인가 생각했다. 나이차가 15살이상 나는데 키고 덩치고 차이가 나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나 소년이 너무 진지하게 화를 내는 터라 오비완은 어색하게 웃으며 소년을 달래보고자 했다.
-그러니까, 아직 열살이잖니, 아나킨은? 이제 쑥쑥 클거,
-흥, 콰이곤보다 작은 주제에!
크윽- 순간 오비완의 평안을 유지하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제대로 찔렸다. 이제 육십대를 향해 돌진해가는, 한때 그의 스승이었던 콰이곤은 여전히 풍채좋고 훌륭한 몸매인데 비해, 이십대 후반에 들어선 오비완은 아직도 또래에 비해 작고 빈약한 몸매에 속했다.
-후우...하, 하하하. 그건 조금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아나킨.
-불만있음 키 커.
-…그게 생각처럼 되면 얼마나 좋겠니.
-뭐야, 무능하네- 당신.
차갑게 내뱉고는, 씩 웃더니 갑자기 무릎으로 오비완의 복부를 콱 찍어내리는것이 아닌가. 컥! 순간적인 공격에 숨이 탁 막힌 오비완을 고소하게 바라보며 소년은 팔짝 침대에서 뛰어내려갔다.
-크윽...아나킨!!
-그럼, 로브는 고맙게 받겠어. 오.비.완.케.노.비.
그러니까 반말하지 말란말이다-! 라는 말은 통증으로 인해 입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묻혀버리고 오비완은 그저 손을 바르르 떨며 유유히 사라지는 아나킨을 노려볼 수 밖에 없었다.
소년의 짓궂은 장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다음 침입때는 라이트세이버를 교묘히 손대놔서 핑크빛 광선이 뿜어져나온다거나-반트가 굉장히 좋아했다- 광선이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휘어져서 카운슬의 눈치를 받지를 않나, 그 다음에는 그의 물건들을 아예 숨겨버리지를 않나, 어쩔때는 아예 대놓고 다가와서 입술이나 귓볼을 깨무는데, 아주 이력이 난 오비완이었다.
"아"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은 어둠이 빛을 거의 다 집어삼켜, 좀 전의 아름다웠던 노을은 온데간데 없었다. 어둠을 뿌리는 하늘에 오비완은 그제서야 템플을 벗어날 생각을 했다. 천천히 일어나 단아한 몸놀림으로 로브를 털고 품위있게 계단을 내려가며 그는 생각했다.
마스터 콰이곤은 그 소년을 the chosen one으로써 완벽하게 신뢰하고 있다. 그런그에게 저 소년이 저지르는 일들을 말해보았자 신뢰를 잃는 건 분명 자신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원통하게도- 소년의 짓궂은 장난의 범위는 오비완, 단 하나에게 국한되고 있었다.
또다시 떠오르는 소년의 만행에 주먹을 발끈 쥐며, 오비완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래, 나에게도 방법이 있다 이거야!
진심(中)
오비완이 선택한 방법은 단순명료했다. 그건 소년을 그냥 '무시' 해버리는 것이었다. 어떤 장난을 치든 4가지없게 말을 하든 무한한 포스의 애정으로 무시해주는 것. 그가 아무리 심각한 장난꾸러기라도 반응이 없는데 그런 장난질을 계속 할 리가 없으리라. 오비완은 믿었다. 일단 마음을 정하자 그의 행동은 나는듯이 빨라졌다.
일단 콰이곤에게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이 중요했다. 어쨌든 전 마스터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오비완에게 있어 누구보다도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날이 밝자마자 콰이곤을 찾았다. 아나킨이 방해할 수 없도록 그가 자는 시간을 신중하게 골라 방문한 것은 다행히 효과가 있었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오비완에 콰이곤은 예전 마스터-파다완 시절처럼 부드럽게 그를 도닥여주었다.
-아나킨은 섬세한 아이다. 앞으로 나를 도와 잘 돌봐주었으면 좋겠구나.
…물론 그 말에는 찬성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날 오후, 오비완은 콰이곤과 아나킨의 대련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딱히 파다완이 있는것도 아니었고 홀로 수련하지 않는 한 한가한 그라 콰이곤의 요청을 거절 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제다이들의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한몸에 받는 요다가 그들을 찾아왔다. 아직도 대련에 열중하는 두 사람을 보며 오비완과 몇마디 담소를 나눈 요다가 콰이곤을 만나기를 청하자, 오비완은 재빨리 그들의 대련을 중단시켰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건을 건네주는 오비완에게 콰이곤은 씩 웃으며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비완. 아나킨을 좀 봐주겠니?"
눈에 힘을 주고 물어오는 콰이곤에 감히 거절을 못하고, 오비완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구나- 콰이곤의 따뜻한 손이 뺨을 쓰다듬어 줌에 가슴 덜컹하고, 뒤에서 목도를 휘두르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아나킨에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콰이곤이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는 요다에게 가버리자, 오비완과 아나킨은 한동안 서로를 향해 못마땅한 시선만을 교환했다. 그러나 곧 그 침묵까지도 견디기가 힘들어 오비완은 가볍게 목도를 들어올렸다. "대련을 하자꾸나" 침착하게 말하고 오비완이 목도를 붕붕 휘둘러보는데, 소년이 갑자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헤?"
갑자기 목도를 내팽겨치고 자신에게 두두두두 달려오는 소년에 흠칫하는데, 콰이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이 냅다 오비완 옷의 치마[?]부분을 걷어올리는 게 아닌가!
"우앗?!"
"아이스께끼-"
그리고 능글맞게 씩 웃는 소년에 순간 무시고 뭐고 오비완의 포스가 폭발할, 뻔했다. 도대체 이런건 어디서 배운거냐 이 머리에 피도 안마른 초딩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의 포스를 간신히 진정시키고나서야-요즘 들어 인내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그였다- 오비완은 소년을 무시한다는 자신의 최우선목적을 상기시켰다. 그는 거칠어지려는 숨을 겨우 가다듬고 표정을 싹 바꾸었다.
"...어"
어린 아나킨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은 뭔가 이상했다. 매번 장난을 걸때마다 얼굴을 붉히고 어린얘마냥 뭐라뭐라 귀엽게 반응해오던 오비완이었는데 오늘은 뭔가 묘하다. 짓궂게 옷을 들추고나서 터져나올 반응을 기다리는데, 머리 꼭대기가 섬뜩할 정도로 차갑게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결국 고개를 들고 오비완을 살피려 하는 아나킨에게, 기다렸다는 듯 오비완의 냉정한 훈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린얘처럼 굴지 말아라. 제다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제다이처럼 바르고 의젓하게 행동해. 넌, 아직도 예전의 너처럼 철없는 아이같이 굴 생각이냐, 아나킨 스카이워커"
"예, 예전의 나라니…!"
"그리고 난 제다이 나이트다. 예의를 갖추어라. 아무리 네가 마스터의 파다완이라도 계속 이렇게 행동할 거라면 마스터 요다에게 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순간 소년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것이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인한 것임을 알아차린 오비완은 속으로 실실 웃었다. 요놈, 약오르지? 그런 그의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난 것일까, 희색으로 아나킨을 바라보던 오비완을 향해, 아나킨이 이를 악물더니 벌쩍 짧은 다리를 쳐들었다...
퍼억-
"크우우욱!!!!!!"
중요한 곳에 제대로 꽃힌 아나킨의 앞차기에 오비완은 하늘이 노래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그대로 바닥으로 고공낙하했다. 거품을 입에 물고 처참히 쓰러져 부르르 떠는 오비완을 아나킨은 씩씩거리며 노려보았다.
"우으으...아, 아나키인...네 이 노옴..."
"씨이, 당신 정말 미워!!!!"
뜻밖에도, 아나킨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고통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오비완의 시야에 정확히 박혀들어왔다. 어...어째서? 이제는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를 의아해 하며 본능적으로 오비완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처입은 것인가?
평소 자기 말이라곤 완전 길가는 개소리마냥 완전 무시해버리던 소년의 이런 반응은 그에게 너무나도 생소했다. 내가...그렇게 심한 잘못이라도 한거야?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아아, 멀미가 나는 것같아-역시 날아다니는 것따윈 질색이야 정말이지 잘 날아다니는 꼬맹이따윈 싫다고- 자신이 무슨소리하는지도 알지 못한체, 오비완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진심 (下)
오비완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마치 독수리처럼 날개를 달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하늘을 날고 있었는데, 눈을 깜박하는 사이 그는 스피더에 타고 미칠듯이 하늘을 질주하고 있었다. 너무 빨라! 인간이 도저히 견뎌낼수 없는 그 스피드에 오비완은 스피더를 멈추려다, 그가 이 스피더를 운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본능적으로 돌아본 그의 옆자리에는 한 매력적인 고수머리를 가진 청년이 신나게 웃으며 스피더를 몰아대고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청년이 오비완의 시선을 알아챈 것인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 모습에 가슴이 시리다. 뭐라 말을 해주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 오비완은 고통스러워했다. 스피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눈조차 뜨기 힘겨움을 느끼며 오비완은 청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나킨-...
"오비완...?"
오른손이 무언가에 단단히 붙잡혀 있는 것을 느끼며 오비완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처음에는 뿌옇기만 했던 시야가 금방 선명해지는 것을 느끼고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꿈...이었나. 짙은 갈색의 고수머리의 청년. 기쁜 듯 슬픈 듯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마지막에, 나는 뭐라고 그를 불렀지...
"오비완!"
거듭된 소년의 부름이 그를 잔념에서 끌어냈다. 그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제서야 오비완은 자기 오른손을 누군가가 계속 쥐고 있었다는 것과,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을 쓰러지게 만든 장본인, 아나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나킨?"
정신을 잃었을때와 마찬가지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년이 그의 손을 절대 놓지않겠다는 듯 굳건히 잡고 있었다. 오비완과 눈이 마주치자, 아나킨은 안심한 듯 한숨을 쉬더니,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아나킨"
"오비완, 와앙!!"
결국 참고 참았던 듯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아나킨이 그에게 안겨들었다. 어어라?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오비완이 이도저도 못하는 사이 아나킨은 오비완의 품에 파고들어 서럽게 울어댔다.
"흑, 흐윽...우에엥...난, 난 오비가 죽었을까봐...우아앙!!"
"아아아나킨;? 흠흠. 죽지 않았으니 걱정 말거라"
물론 죽을만큼 아프긴 했지만.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아나킨이 가엾기도 하고, 소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주면서 오비완은 난생 처음으로 아나킨이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이리 만들어놓고 병주고 약주는 식으로 울어젖히는 건 분명 약오르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자신을 걱정해서 울고 있는 소년이 은근히 감동을 준다는 건 사실이었다.
"자자, 아나킨. 그만, 뚝!"
"흑흑...미안, 미안해요, 오비완"
"응?"
고개를 들지 않은체 아나킨은 막무가내로 사과했다.
"가져간 것들도 다 돌려줄게...흑, 그러니까, 흐윽, 죽지 마. 내가 찢은 거랑 고장낸 거, 흑, 마스터한테 다 혼났어. 그러니까, 내가 다 고칠거야"
"아나킨..."
"오비가 좋아. 오비가 좋아... 흑, 자꾸만 장난치고 싶어서- 맨날 무뚝뚝하지만 나를 봐주긴 하니까. 그러니까..."
눈물에 얼룩져 팅팅 부었을 게 뻔한 소년의 얼굴을 마주보고 싶었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허리에 두른 팔이 단단하다. 창피하기도 할 것이고 서럽기도 했나보다. 차오르는 연민의 감정에 결국 아나킨이 울든 매달리든 가만히 내버려두는 길을 택하며 오비완은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짜식, 내가 좋아서 그렇게 짓궂게 굴었던 게냐?
그러니까 요 녀석도 내면은 착한 거였다니까.
아나킨의 태도가 순식간에 싹 돌아선 것이 조금 의아했지만 오비완은 지금의 이 평화가 만족스러워 사소한 것 따윈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오비완의 허리에 매달린 아나킨의 입꼬리가 빙글 말려올라간 사실을 그는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음 날, 아나킨은 그동안 당당히[!] 집어갔던 여러 오비완의 소집품들을 말끔한 상태로 오비완에게 돌려주었다. 보송보송하게 세탁까지 된 자신의 로브를 감격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오비완은 아나킨을 찐하게 껴안아주었다.
"아나킨! 너무나도 착하구나! 마스터가 잘 가르치셨어. 역시 넌 츄즌-원이었어!"
"헤헤헤. 좋아?"
"그럼! 아나킨. 나는 너무 기쁘단다. 네가 이렇게 착한 아이라는 것을 왜 진작에 깨닫지 못한걸까!...내가 네게 너무 심했구나. 나를 용서해주겠니?"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오비완의 정중한 태도에 아나킨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종종거리며 다가와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하는 소년이 너무나도 귀여워, 오비완은 아나킨과 마주보고 환하게 웃었다.
"있잖아. 나…오비가 내 마스터였음 좋겠어"
은근슬쩍 반말을 고치지않는 아나킨이었지만 뜻밖의 아나킨의 호의에 겨운 오비완은 조금도 그것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스터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오비완에게 아나킨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체 중얼거렸다.
"마스터 콰이곤, 오늘 오비보러 나올때까지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나쁜 녀석이라고 계속 혼냈단 말야. 잘못한 거 아는데, 자꾸만 자꾸만 혼내니까..혼내니까....흐에엥"
"아, 아나킨! 울지 말거라!!"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소년에 오비완의 가슴은 연민과 동정으로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마스터가 아나킨에게 했을 모습이 머릿속으로 플레이가 되면서 오비완의 눈동자는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스터 콰이곤!! 어떻게 이런 어린얘한테 그럴 수 있는거죠!!
정말 실망이야!!!!!
덧)
한 시간 후, 영문모르고 메디테이션을 하던 콰이곤은 난데없이 들이닥친 오비완에게 올바른 육아양육 상식에 대해 길고도 긴 강좌를 들어야했다. (어째서?!!)
-----------------------------------The End--------------------------------
그리고 정확히 10년 후, 제다이 나이트가 된 아나킨은 당당하게 오비완의 방으로 걸어들어갔고,
그 방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입꼬리 올리며 수상하게 웃는 꼬마아나킨만이 안다는
제다이의 전설이 있으니.....(무슨소리냐, 나)
그건 그렇고 오비완 둔팅이.
아나킨이 고백을 하든 입술을 들이대든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생각이 없습니다.
정말, 10년후에 어쩌려고[한숨]
흠흠; 그럼, 이르키르님;ㅁ;
어쨌든 끝입니다 허허허허허 죄송해요 민폐끼쳐드렸습니다
상콤하게 도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