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22. 21:38ㆍCAT
어젯밤의 얘기다. 문득 폰에서 눈을 드니 밀림옹이 바늘을 입에 물고 혀로 넬름넬름하고 있었다. 순간 너무 놀라서 밀림공 입을-한 손씩 상악골 하악골을- 각각 잡고 엄마를 불렀다... 이 시점만해도 혀에 바늘이 박힌 줄 알았는데 엄마! 엄마! 엄마! 세번 외치는 사이 바늘이 점점 들어가 입천장으로 들어가더니 이윽고 보이지 않더라. 눈 깜짝할 사이 정말 믿을수 없게도 바늘이 목구녕으로 꼴깍 하고 넘어간 듯....살살 입을 벌려 텅 빈 목구멍을 관찰하며 밀림공이 방금 백만원을 집어삼킨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저녁 9시 반이라 항상가던 동물병원은 이미 닫았고 24시간 하는 동물병원은 마땅히 아는 곳이 없어 고민이 되었다. 밀림옹이 전혀 아파하지 않고 폴짝폴짝 뛰길래- 고양이, 바늘로 검색을 했는데 의외로 바늘을 맛동산으로 무사히 배출했단 글이 많았다... 그리고 구역질 헛구역질 등등의 증세때문에 병원에가서 바늘을 찾게된 케이스도 많이 보였다. 적어도 난 눈앞에서 바늘을 삼키는 것을 본 샘이니 좀 케이스가 나아 보였다. 응급실을 운영하는 동물병원을 찾는 대신-두고 보다가 아파하면 바로 병원으로 가겠다고-마음 어딘가에서 타협했다. 밀림옹은 집사가 왜 자꾸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자길 쳐다보는지 의아한 눈초리로 내 눈을 바라봤다. 폰으로 계속 검색하고 있는데 밀림옹이 옆에 와 널부러졌다. 이제 그만 잡시다 하는 포즈..... 아침에 연차를 쓰고 병원에 대려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도 누웠다. 행여나 바늘에 찔릴까봐 밀림옹을 살살 위로 끌어다가 품에 안고 배를 둥기둥기해주는데 골골거렸다. 고양이는 아파도 골골거린다고 하던데... 보통이라면 걱정이되서 잠이 안올텐데 몇 분도 안되서 거짓말 같이 깊이 잠들었다....맛동산으로 잘 배출할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맛동산으로 잘 배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의식표면에서는 계속 이 생각을 하고있었지만, 무의식 어딘가에서는 어림 없단걸 알고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새벽에 심한 피로감을 느끼면서 깼는데 정말 오랫동안 잊고있던-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내려해도 기억해 낼 수 없었던 현금이 충만한 체크카드의 비번을 떠올리면서 깼다... 이 비번이 맞을 것이란 걸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빨빨거리는 밀림옹을 보며 한 번 더 타협해서 밥을 먹이고 토하는지 보겠다고 생각했다. 식욕에도 행동거지에도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악마의 속삭임처럼, 밀림이는 멀쩡해 보였고, 난 한 번 더 타협을 했다. 연차를 쓸것인가 말것인가를 가지고 엄마랑 한바탕 싸우고 병원비가 크게 나올 것을 걱정하며 병원에 가지 말라는 엄마에게 밀림이를 맡기고 출근하는데 오늘 하루가 아주 길 것 같았다. 금욜 저녁엔 필라테스도 다니고있어서 평균 귀가시간이 밤10시 남짓......... 집을 나서는데 오늘 하루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출근셔틀에서는 보통 뭔가 하는데, 오늘 아침엔 기운이 없어 널부러질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도 일은......일이 손에 안잡힐 것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꼭 그렇진 않았다. 해야될 것이 꽤 명확해서인가. 아무튼 출근했는데, 8시 반에서 9시 반까지는 원래 집이 비는 시간인 걸 알고는 있었고, 이때 쯤부터 뭔가 잘 못됐단 걸 느끼기 시작했다. 10시 반에 한 번 전화를 했었고-집이 비어있었고, 엄마가 곧 귀가해서 밀림옹을 체크해준다고 하셨지만 연락이 없었다. 11시 반에 한 번 더 전화를 했고, 아직도 외출중이고 곧 집에 가실거라고 하시고, 11시 50분에는 받지 않으시고, 1시에도 받지 않으시고 1시 반엔 결국 집으로 전화를 해봤는데 역시 연락이 안되고...이대로 집에가면 사후경직된 밀림옹이 날 기다리는 건 아닌가 싶고, 이 때쯤 내가 매 단계마다 판단을 완전히 잘못했단 생각을 했다. 우선 생명을 인터넷 검색에 맡기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고로 죽는 것도 운명으로 알고 납득하라는 사람에게 내 고양이를 맡기고 나온 것도 잘못, 어차피 가야할 병원을 늦게가는 것도 잘못, 애초에 바늘을 잡고 빼지 않고 입을 잡고 엄마를 부른 것도 잘못, 다군다나 말을 못하는 내 고양이가 아픈지 안아픈지 내가 무얼 보고 판단한단 말인가?... 생각을 거듧할 수록 바늘을 삼킨 것이 확실한 시점으로부터 최대한 빨리 엑스레이를 찍어서 과연 바늘이 빠져나오고 있는지, 아니면 뭔가 조치가 필요한지 확인해야된다는 것이 명확해졌고, 더 늦기 전에 오후 반차를 쓰고 병원에 데려가기로함. 사정을 설명했더니 부탁드린 것도 아닌데 고양이를 걱정해주시며 반차 퇴근시간보다 30분 더 일찍 보내주셔서 완전 감사했다....가방을 챙기고 나오는 2시 무렵 엄마로부터 '밀림이 괜찮다' 하고 문자가 한 통 왔지만 더 이상 고민은 되지 않았다.
귀가 하자마자 병원 데려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무려 5cm 대바늘이 위에 사선으로 찔려있었다. 오!예! 내가 보고 기겁했던 것은 오직 바늘의 끝자락이었던 모양이다. 길어봐야 3cm 정도나 될거라 생각했는데 5cm 대바늘이 박혀있는 모습을 보니 절대 자연스레 똥으로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밀림옹의 작은체구-3kg를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다.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복막염이 이미 생겼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설명을 하시면서 입에서 똥구멍까지는 몸외부나 마찬가지로 더러운 것이 많지만 몸 내부는 매우 깨끗한데 위에 구멍이 뚫려 위산이 흐르면 몸내부가 더러워질 수 있다는 설명을 얼핏하셨다. 이 설명을 들으며 가운데에 통로가 있는 풍선같은게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 생각 자체는 상당히 웃겼다- 웃음을 참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하고 차분하고 아무말 없는 밀림이가 그렇게 아프고 위험하다니 하나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소개받은 내시경이 있는 좀더 큰 동물병원에 입원시키고 나오는데 음. 내 예감은 적중해서 총 비용은 110만원 이상 나왔다. 결국 입원 시킨 병원에서 한 건 병원비에 대한 조목조목한 설명을 듣고, 내시경 시술 비용(150.-)을 추가해서 시술할 것을 결정한 것뿐이었고 심지어 밀림옹 얼굴 한번, 눈 한번 맞추지 않고 나왔으니까. 정말 이상한 건 아무런 느낌도 없단 거다. 아마 수술하고와서 널부러진 밀림옹을 보면 그땐 미안하고 측은하겠지만 지금은 여전히 아무런 느낌이 없고... 당일 면회는 금하고 내일부터 면회가 가능하다고 하시는데, 나흘 입원하는데 멀쩡하게 수술이 잘 된다면 면회를 왜? 가아하는가 싶고, 제법 큰 비용이 나왔지만 돈에 대해서도 역시 아무런 느낌이 없다. 급전이 필요할 때에 쓸돈이 있단 건 좋긴 하지만 이런게 행복한 인생인가?.... 어쨌거나 기왕 마취한 김에 스케일링까지 부탁함.... 미용까지 부탁했어야되나? 하며 귀가하면서 자궁에 대해 생각한다. 입 식도 위장 항문이 체외나 마찮가지고 그곳에 더러운 것이 많다면 자궁도 체외나 마찮가지고 그곳도 더러운 것이 많을 것인가. 아마 대답은 yes?......
귀가 길에 엄마에게 아부를 하기 위해 모 유명과자점에 빵을 사러가는데 목적의 ATM이 보였다. 시험삼아 만원만 뽑아보는데 오늘 아침에 생각난 비번은 역시 옳았다. 체크카드 긁을 땐 비번이 필요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필요하진 않았지만. 아무튼 무의식은 대단한 것 같다.............타협을 계속하는 의식과는 달리 내 무의식은 오늘 돈이 아주 많이 필요할 것이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고양이가 바늘을 먹어 식겁한 사람들이 격한 감정으로 써놓은 글들을 회상하며- 왜 나한텐 그런 격한 감정이 들지 않고 그저 이렇게 냉정할 뿐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냉정한 상태로 내린 일련의 잘못된 판단들은 대체........... 냥이가 바늘을 먹어서 깜짝 놀라 응급실을 찾아갔다 보다 나을 것이 하나 없는- 아니 냥이의 건강과 내 정신상태를 위험에 빠지게 하는- 잘못된 판단들은 대체....?
아! 일기를 쓰는 사이 마취했다는 연락, 수술 시작한다는 연락,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났다는 연락, 5cm바늘과 더불어 엄청 긴 실이 나왔고, 내일 꼭 면회오라는 연락이 왔다. 바늘도 위험하지만 실이 장에 들어가면 더 위험하다는데 심지어 긴 실이 나왔다고하니 너무 늦지 않게 병원에 갈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인 것 같다. 지금쯤 마취 때문에 밀림옹이 줄줄 오줌을 지리고 있겠지? 털에 온통 오줌내 나는 밀림옹을 받아와도 상처때문에 2~3주간 목욕은 금물일 것 생각하니 벌써부터 ..끕.... 아, 나란 인간은 왤케 감정이 매마른 것일까...
아무튼 결론은 고양이가 바늘을 삼킨게 의심된다면? 곧바로 병원으로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