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 13. 04:36ㆍTXT/Dream
웬 두터운 책을 펼쳤다. 첫페이지는 인물소개- 어차피 인물소개부터 읽어봐야 머리에 들어올리도 없으니 슥 지나치고 바로 제목을 읽는다.
'ㄱㄱ 부자는 한번에 ㅇㅋ'
환타지소설인가? 이젠 통신체 소설이 교과서에 실리는군. 많이 발전했다.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한번에 ㅇㅋ에 밑줄 좍."
아아, 수업중이었던가.
"뜻은 그만큼 선택은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 그만큼? 한번에 할만큼? 에? 뭔가 틀리잖아 그거. 이 문장 빈부의 격차에 따라 인생은 스타트부터 달라진다는 뜻아닌가??
띠디딩띵띵 팅팅팅띵
갑자기 시끄러운 벨이 울리고, 모든 것을 이해했다.
익숙한 차인벨이고, 국어수업의 재현이다.
어릴 때부터 뭐든지 머리로 먼저 '이해'하지 못하면 가슴으로도 '느낄' 수 없었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기억'할수도 없었다. 물론, 성적을 위해 단기적으로는 잘 외웠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기억하지 않았다. 왜냐고? 필요가 없으니까. 외면적으로 말 잘듣고 예의 바른 착한아이였던 만큼, 내면적, 즉, 가치관 형성에 있어서는 무언의 반항을 거세게 하는, 사고방식에 있어서는 아주 독립적인 아이였다.
문제는 그렇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내게 보이는 것들과 너무 달라서, 어른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점. 특히 도덕은 그 필요성이 의심스러웠다. 그 어디에서도 자유, 평등, 평화, 선의의 경쟁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그 뜻은 서로 상충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며, 선생님들의 행동은 과연 모범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과연!
이런 걸 왜 배우지? 중요한 것은 성적이고, 순위이고, 우월함뿐일 터였다. 1등이라는 칭호, 상위권이라는 분류만이 내게 내가 원하는 것을 쥐어줄 수 있었다. 도대체 왜 도덕수업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3까지 있어야하는지 도무지 수긍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도덕은 착한 척만 하면 되는 만큼 쉬웠고, 성적따기 쉬운만큼 좋았다. 정말 싫어하던 수업은 국어였다.
국어. 천하의 바보같은 수업. 문학작품이라는 일종의 예술품을 두고 빨간 밑줄을 긋고, 작가가 주석을 단 것도 아닌 이상에야 그 뜻이 심히 의심스러운 해석이나 달달 외우는. 더욱이 교육이 보급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쓰기만 해도 작품으로 남던 시절도 있고. 대체 별로 우수함이 느껴지지도 않는 작품들이 우리들의 역사라니. 가슴으로 느끼는 법을 배우고, 감수성을 키우고, 표현력을 연마해야할 분야에서. 국어 수업이야말로 바람직하지 않은 학교교육의 초상화가 아닐 수 없었다. 아주 간혹 일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작문과제는 전과나 참고서를 보고 단어만 바꿔가며 배끼는 그런. 더욱이 참을 수 없이 불쾌하게도 일기를 검사하는. 그 어느 누가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읽는다는 것을 알면서 진실된 작문을 할 수 있을까? 덕분에 일기에는 단 한 번도 솔직한 글을 쓸 수 없었고, 글을 못쓴다는 평가가 꼬리표가 되어 늘 따라 다녔음에도 그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모든 것은 비밀이니까. 특히나 거짓말쟁이 선생과 간섭이 심한 부모님에게는.
학교에서 일기를 가지고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듣는 아이들. 대부분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좋다. 그럴수밖에. 내게는 공개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그들에게는 자랑하고 고자질하고 싶은 얘기인 모양이니까. 못쓴다는 평가를 듣는 아이들은 어떨까? 점점 글쓰기가 싫어지고, 비굴해진다. 그러니까 웃기다. 작문이라면 당연히 체크하고 지도해야겠지만. 일기 검사따위는 제발 그만두라고. 도데체 전국의 그 많은 국어선생들 왜 스스로 깨우치고 그만두지 못하는건데? 무슨 권한으로 남의 영혼에 흙발로 성큼 들어오는거지? 학생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도 없다는거야? 정말로 학생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지 못하니까, 역지사지 뜻만 가르치면 뭐하는데? 제발 좀 정신좀 차려. 당신들의 그 무신경함때문에 학교생활 매일이 괴로워. 지금도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이 너무 싫다고.
그럼에도 여전히 성적만은 좋았던 나는, 나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성적을 잘 받고, 예의가 바른만큼 내 삶에 간섭을 받지 않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적뿐이니까. 그렇게 그들의 요구에 부응함으로서 대신 다른 모든 것을 내 색으로 채울 권리를 그들로부터 되찾은 것이다. 바로 내가 그렇게 했다. 나를 키워주고 이끌어준 그들이 마치 무슨 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금은 어떨까. 지금은. 학생이 아니고,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혼자 잘나서는 안되고, 함께 성장해야한다고 생각하니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사람들과 함께 높이 상승하는 것, 사람들과 함께 신천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고, 혼자서는 그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나서야 비로소 도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예의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거짓된 표면만 착한아이가 아니라, 정말로 도덕적이 될 수 있도록 자주 되새김질하고, 반성하고, 그렇다. 높은 도덕성을 향한 절심함은 간신히 눈물이되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