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양상
2005. 4. 27. 20:57ㆍFavorite/StarWars
아나킨의 오비완을 향한 증오가 어떤 행태일 것인지 안다.
아나킨이 오비완의 죽음을 바라게 되는 그 심리를 나는 안다.
성장과정에서 아나킨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여 거? 오비완을 실망시킨다.
오비완으로 대표되는 제다이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나킨은 좌절한다.
이윽고 자신을 굴복시키는 오비완의 기대에 그는 화가 난다.
사실은 오비완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는 것이라는 점을
아나킨은 알고 싶지가 않다.
아나킨이 가진 패배감의 원인중 가장 큰 부분은 그 자신에게 내재된 본래의 성향에 있고,
아나킨은 그러한 사실을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알 고 있기때문에,
그러한 사실은 결코 쉽사리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그는 더욱 화가 난다.
그 화는 엄밀히는 타인-오비완-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를 향한 것이지만,
아나킨은 그 모든 것을 오비완 탓으로 돌린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그의 재능에 대한 그의 자존심은
그에겐 현실을 왜곡해서라도 지켜야할 그 무엇이므로.
자신의 재능이나 기술이 오비완의 재능이나 기술을 능가한다는 사실만은
자신을 배반하는 일 없이 언제나 만족시키기에.
오비완의 무능은 경멸에 상응하는 것이며.
그의 마스터는 사실 콰이곤 진일 터였으니까.
아나킨에겐 오비완을 증오하는 것이 맞는 선택처럼 보인다.
한편 아나킨은 도피처로써 파드메를 선택한다.
그리고 마침내 파드메에게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오비완(제다이)에게서는 받지 못했던.
파드메는 그를 위로하고 사랑하여 그의 힘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고 헌신했으리라.
그러나 그의 도피처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가 꿈꿔오던 파드메와의 관계와 현실 속의 그들의 관계 사이에는 큰 갭이 있었을 것이다.
오비완이 만약 이렇게 했더라면 나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그의 도피처는
파드메가 자신이 바라는대로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킬수 없다는
형태로 그에게 또다른 절망을 안겨준다.
아나킨은 점차 지친다.
오비완이 빛에 속한 인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파드메 역시 빛이라는 설정이다. (비록 설정과 디벨롭된 캐릭터간의 갭에 다소 의문이 생기지만)
전자는 자신을 거부하는, 후자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이 두개의 상반된 양상을 띄는 찬란한 빛 속에서
모두가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아무도, 아나킨 자신조차 그런 결과를 바라지 않았지만,
아나킨은 자신의 어둠을 직시하게 된다.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고, 그렇게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 원인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싫어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한 빛에는 강한 그림자가 따르기 마련이듯이,
그들의 강한 빛은 기어코 아나킨의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고야 말았다.
결국 아나킨은 빛의 굴레를 증오하고,
파드메를 지배하고 오비완의 죽음을 희망하여 빛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란다.
그는 아마도. 그것만이 패배감과 죄책감의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한 것이다...
아나킨이 오비완의 죽음을 바라게 되는 그 심리를 나는 안다.
성장과정에서 아나킨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여 거? 오비완을 실망시킨다.
오비완으로 대표되는 제다이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나킨은 좌절한다.
이윽고 자신을 굴복시키는 오비완의 기대에 그는 화가 난다.
사실은 오비완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나는 것이라는 점을
아나킨은 알고 싶지가 않다.
아나킨이 가진 패배감의 원인중 가장 큰 부분은 그 자신에게 내재된 본래의 성향에 있고,
아나킨은 그러한 사실을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알 고 있기때문에,
그러한 사실은 결코 쉽사리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그는 더욱 화가 난다.
그 화는 엄밀히는 타인-오비완-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를 향한 것이지만,
아나킨은 그 모든 것을 오비완 탓으로 돌린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그의 재능에 대한 그의 자존심은
그에겐 현실을 왜곡해서라도 지켜야할 그 무엇이므로.
자신의 재능이나 기술이 오비완의 재능이나 기술을 능가한다는 사실만은
자신을 배반하는 일 없이 언제나 만족시키기에.
오비완의 무능은 경멸에 상응하는 것이며.
그의 마스터는 사실 콰이곤 진일 터였으니까.
아나킨에겐 오비완을 증오하는 것이 맞는 선택처럼 보인다.
한편 아나킨은 도피처로써 파드메를 선택한다.
그리고 마침내 파드메에게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오비완(제다이)에게서는 받지 못했던.
파드메는 그를 위로하고 사랑하여 그의 힘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고 헌신했으리라.
그러나 그의 도피처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그가 꿈꿔오던 파드메와의 관계와 현실 속의 그들의 관계 사이에는 큰 갭이 있었을 것이다.
오비완이 만약 이렇게 했더라면 나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그의 도피처는
파드메가 자신이 바라는대로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킬수 없다는
형태로 그에게 또다른 절망을 안겨준다.
아나킨은 점차 지친다.
오비완이 빛에 속한 인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파드메 역시 빛이라는 설정이다. (비록 설정과 디벨롭된 캐릭터간의 갭에 다소 의문이 생기지만)
전자는 자신을 거부하는, 후자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이 두개의 상반된 양상을 띄는 찬란한 빛 속에서
모두가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아무도, 아나킨 자신조차 그런 결과를 바라지 않았지만,
아나킨은 자신의 어둠을 직시하게 된다.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고, 그렇게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 원인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싫어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한 빛에는 강한 그림자가 따르기 마련이듯이,
그들의 강한 빛은 기어코 아나킨의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고야 말았다.
결국 아나킨은 빛의 굴레를 증오하고,
파드메를 지배하고 오비완의 죽음을 희망하여 빛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란다.
그는 아마도. 그것만이 패배감과 죄책감의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