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Books2021. 7. 14. 16:44

아침햇살의 천부경 강의 3장

 

근원에 머물며

만왕만래 하는 사람

 

존재에 발을 딛고

심心과 성性을 닦으며

세계와 관계하는 4번가 사람

나는 삶의 예술가

 

대삼합육생칠팔구 大三合六生七八九

 

대삼합(천일天一과 지이地二와 인삼人三의 총합)은 육이 되어

칠과 팔과 구를 낳고

 

大 큰 대

合 합할 합

六 여섯 육

生 날 생

七 일곱 칠

八 여덟 팔

九 아홉 구

 

운삼사성환오칠 運三四成環五七

 

삼(내단전內丹田: 머리 가슴 배)과 사(외단전外丹田:팔다리)로 운행하고 오(오륜五倫)와 칠(칠정七情)로 순환하며 이루니

 

運 돌릴(운행할)운

四 넷 사

成 이룰 성

環 돌 환

五 다섯 오

 

상단전 머리 생각 지(지력) 천天
중단전 가슴 느낌 덕(심력) 인人
하단전 체(체력) 지地

 

그러므로 삼과 사를 운행한다는 것은 머리와 가슴과 배가 통합되고 손발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이 원만해지고 사가 열리는 거죠.

삼이 사람의 내면적, 개인적 수도방법이라면 사는 공동체적, 사회적, 외향적 활동을 의미해요.

이 둘이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내면에 가득한 지혜의 빛과 사랑, 생명 에너지가 외면적 활동과 결합하여 삶으로 표현된다.

 

삼사는 심의 세계, 즉 여기 나 없이 있음에 속하고 오칠은 성의 세계, 즉 이곳 나되어감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4번가 사람인 삶의 예술가로 살려면 둘 다 수련하여 운삼사성환오칠을 이루어야 한다는 거예요.

하나만 건강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일묘연만왕만래一妙衍萬往萬來

용번부동본用變不動本

 

하나는 신묘하게 흐르면서 만번을 가고 오며 쓰임이 변화하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妙 묘할 묘

衍 흐를 연

萬 일만 만

往 갈 왕

來 올 래

用 쓰일 용

變 변할 변

不 아니 부

動 움직일 동

 

하나의 근본은 변함이 없되 디자이어로 나타날 때는 신묘하게 변화한다.

유일신이라는 건 나뉘지도 않고 나눌수도 없는 하나, 스스로 없이있는 존재 그 자체이지요.

그러니 유일신을 섬기는 이는 어떻겠어요?

해와 달과 나무와 풀과 내가 하나임을 알아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요?

그 하나에 뿌리를 박고, 다시 말해 존재라는 반석 위에 집을 짓고 만왕만래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거죠.

그냥 존재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근원에만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운삼사 성환오칠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오만 가지로 나타나 끊임없이 되어가며 관계를 맺는 게 바로 우리가 할 일입니다.

여기나없이있음과 이곳나되어감이 통합된 삶을 사는 사람은 이처럼 시공간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새롭게 느끼고 받아들이며 살 수 있습니다.

 

 

 

눈뜨면 이리도 좋은 세상 159~179p

 

 

생각

 

내가 육체를 입고 세상에 왔다는 것은

생각을 하고 생각을 만나 생각을 살러 왔다는 말이다.

 

생각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삶의 질이요 양이다.

생각 없이 나를 찾을 수 없고, 생각 없이 나를 살 수 없다.

삶을 산다는 것은 생각을 산다는 것이다.

 

삶의 멋과 맛은 다 생각에서 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보지 못하고

통로인 생각에 붙잡히고 수단인 생각에 끌려 다닌다.

생각을 요리하지 못하고 생각에 먹히고

생각을 다루지 못하여 생각의 노예로 평생을 산다.

 

깨어난다는 말은

생각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고 나온다는 말이다.

 

겹겹이 되어 있는 생각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고 나와

순수 그리스도의식인 영성이 발현하도록 하자는 것이요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이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생각이다.

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함께 하는 것이 생각이다.

이 세상에 와서 돌아갈 때까지 함께 하는 것이 생각이다.

그러니 생각과 친하게 지내야 하지 않을까.

친하게 지내려면 생각을 존중해주고 생각의 성질을 알아

그에 알맞게 대하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내가 먼저 생각과 좋은 친구가 되면

생각은 절대 배반하는 법이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몇십 배, 몇백 배로

갚아주고 도와주는 것이 생각의 성질이다.

반대로 생각과 잘 사귀지 않고, 돌보아주지도 않고

안부도 묻지 않고, 마구 대하면 생각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

나를 망하게 하는데 엄청난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가세를 한다.

 

생각과 잘 사귀어 보라.

생각과 좋은 친구가 되어 보라.

생각은 천사가 되어 나를 하늘문까지 데리고 가준다.

자기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사라진다.

그 생각이 끝나는 자리가 하늘이다.

생각은 우리를 하늘까지 데리고 가려고 오늘도 애쓰고 있다.

 

 

관광

 

여행은 익숙한 것들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눈과 아름다운 귀를 갖고

돌아오는 것이다.

돌아와 새로워진 눈과 아름다운 귀로

내 집과 내 나라가 제일 좋고

내가 하는 일이 가장 알맞고

나와 함께 사는 가족과 친지와 동료가 참 귀한 것을 아는 것이다.

 

떠난다는 것은 불편을 스스로 겪겠다는 것이다.

불편과 모험을 감당할 용기 없이는 떠날 수 없고

떠나지 않고서는 여행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떠난다는 것은 그 무엇인가를 버려야하고

그 누구인가를 잃어야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여행은 모험이다.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다.

길을 물어야 하고 음식맛을 물어야 하고 화장실을 물어야 한다.

그러니 여행은 불편하다.

여행은 이렇게 자신을 불편과 모험 속으로

스스로 집어넣는 자기 단련이다.

 

여행은 빛을 보는 관광이 되어야 한다.

이미 그곳에 드러난 빛의 보고

그 빛을 통해 내 안에 있는 빛을 보아야 한다.

어디나 거룩한 땅이요

누구나 거룩한 사람이요

언제나 거룩한 시간이다.

 

삶은 여행이요 관광이다.

삶은 여행을 통해 빛을 보는 것이다.

인생은 여기 나 없이 있음을 떠나

이곳 나 되어감의 세계로 나오고

이곳 나 되어감의 세계에서

다시 나 없이 있음으로 돌아가는 여행이다.

여행자는 어느 한곳에 멈추지 않고

그 무엇에 붙들리지 앟ㄴ는다.

돌아갈 때와 기한이 있음을 알고 있어

어느 한곳 더 보려고 하고

무슨 얘기 하나 더 들으려고 하고

그 무엇 하나 더 경험해 보려고 애를 쓴다.

이렇게 보고 듣고 경험함으로 안다.

 

내가 바로 빛이요.

길이요

생명임을 말이다.

인생은 이렇게 '삶'이라는 여행을 통해

'나'라는 빛을 보는 것이다.

지구별 여행, 지구 나들이

우리 모두는 지금 지구별 여행을 통해

'이런 내가 참 좋구나'를 알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이렇게 나를 알아 가는 것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영생이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이미 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지구 나들이, 지구별 여행중이다.

 

 

 

삶은 춤이다.

우리는 춤을 잃어버렸다.

죽은 삶이다.

 

몸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가 진리다.

몸이 굳은 것은 생각이 굳은 것이요

얼굴이 뻣뻣해진 것은 감정이 메마른 것이다.

수치심과두려움

어색함에 마음이 묶이고

그 마음은 몸을 묵고 얼굴을 굳게 한다.

춤은 선물이다.

춤은 이렇게 굳은 몸을 풀게 하고 뻣뻣해진 얼굴을 펴게 한다.

몸이 풀리고 얼굴이 풀리면 감정도 풀리고 생각도 풀린다.

춤은 이렇게 꽁꽁 묶인 몸과 마음을 풀게 하여

몸과 마음을 하나되게 하는 힘이 있다.

춤은 신비다.

춤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춤을 추면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바깥 장단에 맞추어 만들어진 춤은 춤이 아니다.

춤은 내 안에 있는 장단과 가락을 찾아

몸을 통해 흐르는 것이다.

내 안에 나이고 싶은 생각과 느낌을 

몸으로 말하는 언어다.

춤 속에는 춤추는 이의 슬픔이 있고 외로움이 있다.

다짐이 있고, 희망이 있고, 고백이 있고, 외침이 있다.

춤을 통해 나의 과거를 만난고

현재를 확인하며

미래를 전망한다.

춤 속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걸음과 제스처는 지구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춤이었다.

오늘에 와서 그 하나님은 이제는 나를 통해 춤을 추고 싶어하신다.

 

춤으로 드리는 기도

춤으로 드리는 예배

춤으로 사는 일상

 

태초에 춤이 있었다.

춤이 나와 함께 있었다.

나는 곧 춤이다.

 

 

 

사람은 그 무엇엔가 취해야 산다.

사람은 누구나 바깥이 아닌 안에 이미 술을 갖고 산다.

바깥에서 쉽게 마시고 취하는 그 취함은 싸구려다.

그런 취함은 신성을 도저히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저질이다.

우리 안에는 이미 진짜 술이 있다.

그 술 마시는 법이 명상기술이다.

 

깨어나 살아가야한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자기만의 독특한 desire를 통해

떠올리는 취함.

자기 맛에 취해 살 때 물이었던 사람은

불이 되어 활활 타올라 자기를 다 사르게 된다.

자기 일에 취해 다 불살라 보라.

이때 알게 될 것이다.

삶 자체가 술이 아니고

내가 바로 삶에 취하고 사람을 취하게 하는

진짜 술임을 말이다.

 

 

멀미

 

변화에 따라 변화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것이 머리가 어지러움으로 반응을 한다.

그만 내리거나 아니면 변화에 잘 대처하라는 신호인 것이다.

 

운전사는 좌위회전을 할 때에 핸들을 조정하면서

차보다 조금 앞서 몸을 움직여 준다.

몸의 쏠림을 미리 방지한 것이다.

능변이다.

 

자고 있는 사람은 자동차나 비행기와

일체가 됨으로 봉변을 당할 일이 없다.

능변여상이다.

그래서 멀미를 하지 않는다.

 

능변과 어울림으로 하나 될 때에 멀미는 없다.

죽음은 인류가 겪고 있는 봉변이다.

죽음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꼼짝 못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죽음이 오기 전에 죽음으로써

사망권세의 봉변을 넘어

부활의 능변을 열어주신 분이다.

능변여상

변함으로써 변하지 않을 수 있다.

 

살았다는 것은 스스로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변하지 못할 때는

어지럼증의 멀미를 주신다.

이렇게 멀미를 하면서도

자기생각, 자기자리, 자기시간을 고집하면

구토를 하게 되고

결국은 쓰러지게 하면서까지도 변화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섭리다.

더 이상 스스로 변하지 못할 때는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서라도

결국은 변화시키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변화의 근원이시다.

멀미는 주변 적응능력을 알게해주는 바로미터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경보 시스템이다.

 

 

 

몸은 밥을 먹고 살고

생각은 생각을 먹고 산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그 육체가 되듯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가 그 사람의 삶이 된다.

음식에는 질이 있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저급의 생각은 저급의 생각을 먹고

고급의 생각은 고급의 생각을 먹는다.

더 나은 생각, 더 새로운 생각, 더 영양가 있는 생각을

골라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영혼을 살찌우는 그런 생각들이 들어있는 밥상이

바로 책이다.

책을 읽고 여러 생각들을 만나는 것은

나를 찾고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이 세상 모든 책은 모두 내가 어떠함을 알려주는 책이다.

내가 누구고 무엇을 해야하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알려주는 신호들이다.

과학서적을 읽어야 한다.

이는 내 안에 오성이 있기 때문이다.

철학서적을 읽어야 한다.

이는 내 안에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서적을 읽어야 한다.

이는 내 안에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서적을 읽어야 한다.

이는 내 안에 영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성과 이성과 감성과 영성으로 되어 있어

과학과 철학과 예술과 종교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내가 되고 내가 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

 

책을 읽지만 책에 갇히지 말자.

그러려면 내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보게 해야 한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읽게 해야 한다.

나는 그 책이 있기 전부터 있고

그 책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모든 책은 나의 사건기록이다.

나의 사건들을 읽어 보여주려고

수많은 책들이 지금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logos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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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Books2021. 7. 14. 13:48

아침햇살의 천부경 강의

 

2장

인간의 가능성은

일적십거에 있다

 

변하지 않는 가운데 변화하고

뿌리를 내리면서 동시에 나아가는 삶

하나에서 시작해 완성을 이루는

일적십거 一積十鉅의 삶

 

노예의 주문에서 벗어나 주인 되기

많은 이들이 다른사람들의 말에, 다른 사람의 시선에, 비판에, 평가에 걸려들어 옴짝달싹 못하고 산다.

 

예수가 앉은뱅이에게 묻지요.

당신이 원하는 게 뭐요?

일어나 걷는 겁니다.

그래? 그럼 일어나 걸어라!

이게 전부입니다.

문제가 무엇이냐, 원인이 무엇이냐 묻지 않아요.

다만 원하는 것을 물을 뿐입니다.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거라고요.

 

과거에는 군부독재나 파시즘이나 쇼비니즘 같은 것이 무서웠죠.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건 자본과 시장 독재 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체제에 마비되어서 돈이 제일인 줄 알고 살기 쉬워요.

그래서 돈 놓고 싸우는 삶을 택하는 겁니다.

예수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붓다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불성이 있다고 했고요.

그러니 어떻게 살라고요?

비교하지 말라는 거죠.

주문에 걸려들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안에 빛이 있으니 그걸 드러내며 살라는 겁니다.

그런데 나를 모르면 어떻게 돼요?

빛이 안드러나요.

그러니 어둠 쪽으로 가는 게 당연합니다.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니까요.

디자이어란 각자의 독특한 생명력.

세상에 나타난 모든 것은 디자이어를 갖고 옵니다.

나의 디자이어를 알아야 나로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요.

이 디자이어는 비롯함이 없는 하나, 즉 무와 영에 가장 가까이 잇어요.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지요.

천부경 또한 표현만 다를 뿐 디자이어의 속성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석삼극무진본 析三極無盡本

천이일지일이인일삼 天一一地一二人一三

하나가 삼극(천지인)으로 나뉘어도 근본은 변함이 없으며

(하나의) 천이 일로, (하나의) 지가 이로, (하나의) 인이 삼으로 분화된다.

 

析 쪼갤 석

三 셋 삼

極 지극할 극

盡 다할 진

本 근본 본

天 하늘 천

地 땅 지

人 사람 인

 

비롯함이 없는 하나가 셋으로 나누니다 해도 근본은 변함이 없다.

비롯함 없는 하나로부터 수많은 디자이어가 나타나도 근본, 즉 애초의 그 하나는 그대로라는 겁니다.

애초의 그 하나와 거기서 나온 디자이어는 분리할 수가 없는 겁니다.

변화하나 근본은 변화하지 않는 것, 이게 바로 핵심이예요.

 

대일→석삼극
大一→析三極
1→3
천(天) - 일(一) - 석삼극(析三極)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
지(地) - 이(二) - 석삼극(析三極) 천이일(天二一)
지이이(地二二)
인이삼(人二三)
인(人) - 삼(三) - 석삼극(析三極) 천삼일(天三一)
지삼이(地三二)
인삼삼(人三三)

 

ALP 수련의 두 가지 중요한 개념

'여기 나 없이 있음'

'이곳 나 되어감'

 

근본은 변화하지 않지만 그게 세상에 나타날 때는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옵니다.

그러니 그걸 어느 때, 어느 공간에 맞춰 잘 적용하느냐에 따라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모양새가 달라지겠죠. 

시간과공간과 인간에 맞게 자유자재, 능수능란하게 변화하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변화의 최고 경지예요.

우주 만물의 핵심은 변화에 있습니다.

개인이든 회사든 나라든, 때에 맞게 변화해야 앞서가지 않습니까?

내가 어느 분야에 고나해 때를 잘 모르면 그 방면에서 철인으로 인정받은 자에게 물어보세요.

 

 

일적십거무궤화삼 一積十鉅無櫃化三

하나가 쌓여 십으로 커질 때 삼극이 무한하게 변화하니

 

積 쌓일 적

十 열 십

鉅 커질 거

櫃 궤(다함) 궤

化 변화 화

 

천이삼지이삼인이삼 天二三地二三人二三

천이 둘로, 지가 둘로, 인이 둘로 나뉘어도 삼극이다.

 

이 세상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분화되지만 근본인 하나는 그대로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두 가지 주제로 정리하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으로 나눌 수 있지요.

 

시무시

일석삼극무

진본천일일지일

이인일삼일적십거무

궤화삼천이삼지이삼인이

삼대삼합육생칠팔구운삼사성

환오칠일묘연만왕만래용변부동변

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일종무종일

 

 

<내 인생 실현 사다리>

... ↑이곳 나 되어감 (becoming)
디자이어...
존재, 하늘, self... 여기 나 없이 있음 (being)

나타남에서 사라짐으로,

그 기반 위에서 다시 나타나
되어가는 과정이 삶이다
(일음일양위지도)
오늘... 디자이어의 실현을 통한 '나'와 '그'의 통합 ↑ 이곳 나 되어감 (becoming)
금주 계획
금년 목표
중장기 계획... 삶의 4가지 영역에서 관계 맺기. 그를 통한 가치 실현
생각(가치)... '어떤'의 영역. 느낌이 물질화 된 것
영혼느낌(디자이어를 감지하는 센서) ... 시방느낌은?
디자이어 desire (생명력, 하늘씨앗)... 디자이어를 알아야 참나를 만날 수 있다
존재, 하늘, self, 영원, 도, 무, 공  여기 나 없이 있음 (being)

 

존재계 3번가 4번가
1번가 2번가
  현상계

*존재계 - 여기나없이있음, Being, 이理, 영혼, 정신, 보리, 예...

*현상계 - 이곳나되어감, Becoming, 氣, 육체, 물질, 살타, 혀...

 

1번가에 사는 사람은 뭐가 변하고 변하지 않는지도 몰라요.

2번가 사람들은 변하는 것에만 취해서 살고요.

3번가 사람은 비롯함 없는 하나에만 머물러 있지요.

분화하고 변화하는 단계로 가야 하는데 이건 안 하고 변하지 않는 본질만 잡고 있는 겁니다.

4번가의 삶을 사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을 조율하면서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춥니다.

뿌리는 늘 변함없는 근본에 두고 때에 맞추어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한다는 겁니다.

 

근본에만 뿌리 박고 가만히 잇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근본을 잊어버리면 삶 자체가 흔들려요.

중심이 없기 때문이지요.

다만 역할이잖아요.

그 역할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역할 찾으면 돼요.

그게 능수능란, 자유자재하게 사는 삶입니다.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실패할수도, 성공할 수도 있는 거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영혼이 진실로 원하는 것을 할 때 존재가 더 만족하고 역할은 존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쌓고 또 쌓는 것이 완성의 지름길

일적십거무궤화삼이란, 근본은 변하지 안으니 걱정말고 제발 좀 쌓고 쌓아서 성장해 봐라, 할 수 있는 만큼 커져봐라, 이 소리입니다.

자기 내면의 술에 취해서 그 길을 계속 가는 게 바로 일적십거를 이루는 비결이예요.

인간의 가능성은 일적십거에 있어요.

쌓고 쌓아서 십거, 즉 완성을 이루는데 있다고요.

부처님도 반야심경을 설파하면서 그러셨잖아요.

넘고 넘고 또 넘어 가라고, 그럴 때 궁극의 지혜를 얻게 된다고요.

 

일단 시작할 때 가능성이 열린다

그런데 사람들이 일적은 안 하고 십거를 이루길 바라지요.

하나 쌓는 건 등한시하면서 완성을 원해요.

온갖 한계는 다 갖다 붙여놓고선 감히 무궤를 꿈꾼다고요.

규칙과 한계들을 넘어설 때만 창조가 일어나고, 그 창조 행위를 통해 하나씩 쌓아갈 때 비로서 십거가 이루어지는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삶의 본질은 패스오버, 유월절, 바라밀다라고 그랬죠.

넘고 또 넘어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십거가 된다고요.

없다고 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들어 놓은 한계다.

그런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긴다.

 

창조는 기존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일어납니다.

칭찬뿐 아니라 비판의 소리까지 다 수용.

이렇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기의 물음을 놓치지 말아야해요.

자기 물음이 있으면 경험이 풍부해지고 그만큼 더 깊게 삶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람되려, 살러 온 거지요.

그러니 물음을 가지세요.

그리고 그 위에서 좋은 건 다 받아들이십시오.

 

 

 

눈뜨면 이리도 좋은 세상 139~158p

 

 

산다는 것은 맛을 본다는 것이다.

입맛이 잇고 살맛이 있다.

달고, 쓰고, 시고, 짜고, 맵고, 싱겁고

떫고, 텁텁하고, 후끈하고, 고소하고

구수하고, 상큼하고, 화끈하고, 아리고 등등

여러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은총 중의 은총이 아닐까?

 

어린시절에 임밧을 잃었을 때

아주 쓴 익모초를 한 사발씩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주 쓴맛을 보아야

제 입맛이 제대로 돌아올 줄 알았던 것이다.

 

살맛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쓴약을 한 번 들이켜 마셔봐야 한다.

고통이라는 쓴맛

고난이라는 신맛들을 봐야

인생의 살맛을 그때서야 느낀다.

정신이 차려지고 얼이 차려진다.

말씀의 세계에서 보면 세상에는 맛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단지 내가 그 본래의 맛을 못 느낄 뿐이고

또 어떤 맛만 느끼려는 편식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선 자기 맛부터 느껴 보자.

자기 맛에 취해 자기 맛을 내는 사람

살맛 나는 사람이다.

살맛을 내니 그 사람을 서로 맛보려고 하지 않을까?

 

맛있는 사람

바로 멋있는 사람이다.

 

 

쉼표와 마침표

 

쉬어야 하는데 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하는 것, 무위의 위

이는 창조 중의 창조다.

 

들숨과 날숨을 가만히 지켜볼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자기의 한계와 자기의 분수를 알게 된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 한계와 분수르 ㄹ알게 될 때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마침표가 필요하다.

일단 한 뭄장과 말을 마쳐야 다음 문장과 말을 할 수 있다.

하던 일을 마칠 줄 알아야 한다.

관계 하는 관계르 ㄹ일단 정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일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쉬어야 할 적당한 곳에 쉼표가 찍히고

마쳐야 할 때 마침표가 찍힌 문장과 글은 시원시원하다.

그런 글은 읽기에 좋고 그런 사람은 보기에도 좋다.

의사전달이 잘 되어 분명하고 명료하다.

이런 삶은 참 시원하다.

 

 

화에너지를 창조에너지로

 

화는 불이다.

불은 활활 타야 불이다.

화는 에너지다.

이 에너지를 어떠헥 변화시키고 사느냐가 자기 삶이 된다.

아무데서나 불을 내면 화재가 된다.

너도 죽고 나도 죽이는 것이 화재다.

그러나 불을 제대로 쓰면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고

자동차를 움직이고 우주선을 달나라까지 쏘아 올리는 힘이 되고

쌀쌀맞은 쌀을 밥으로 만드는 생명이 된다.

 

화는 빛과 힘과 생명을 품고 있는 에너지다.

그대 안에 그렇게 있는 화에너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그냥 묻어 두는 것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다울 때는 분노를 느낄 때다.

사랑에 불이 타고

정의에 불이 타고

의리에 불이 타야 한다.

그때 사람은 영혼의 무게가 더해지고

영혼의 깊이가 더해진다.

십자가 없이 부활이 없듯이

분노 없이 평화가 없다.

포도가 긇어오르지 않으면 포도주가 되지 못한다.

쌀이 끓어오르지 않으면 밥이 되지 못한다.

구들이 데워지지 않으면 방은 따뜻해지지 않는다.

 

불의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가난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교만한 힘에 대해 분노를 느낄 때

비로소 우리 안에 불이 붙는다.

이렇게 일어난 불을 창조에너지를 변화시키는 것이

내가 누리는 삶의 질이다.

 

자신의 무지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자신의 두려움에 분노를 느끼고

자신의 수치심에 분노를 느낄 때

그 사람은 불이 되어 활활 타서

그런 자신을 화로 다 태워서

빛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삶의 연금술이다.

 

 

하나

 

행복은 몸과 마음이 하나될 때 느끼는 뇌의 작동 중의 하나다.

자기가 화가 나 있는데 화가 나 잇는 줄을 모르고

고마운데 고마운 것을 모른다.

몸 따로, 마음 따로다.

이는 죽음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기분 나빠지는 기술들을 참 많이도 갖고 있는데

기분좋아지는 기술은 별로 없다.

몸 따로 마음 따로에서 나오는 것이 갈등이다.

마음 따로 일 따로 속에서 나오는 것이 원망이다.

일 따로 몸 따로에서 나오는 것이 짜증이다.

 

갈등과 원망과 짜증을 넘어

조화와 감사와 기쁨을 사는 길은 하나다.

몸과 마음을 하나되게 하고

일과 마음을 하나되게 하고

몸과 일을 하나되게 하는 것뿐이다.

따로가 아닌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법칙이다.

 

그 모든 것을 하나되게 하는 것이

들숨과 날숨인 호흡이고

그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삶에 최고 비밀 중의 비밀이다.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면서 얼굴에 미소를 지을 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일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몸과 일이 하나가 된다.

그 하나됨에서 일어나는 것이 행복이다.

 

들숨에 하나

날숨에 둘

들숨에 지금

날숨에 여기

들숨에 지금 이 순간

날숨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하고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삶의 예술가로 사는 모습이다.

 

 

숨결

 

들숨과 날숨

그 사이의 여백을 놓치니

생각에 빠지고 느낌에 휘둘리게 된다.

 

들숨에 탄생이 있다.

날숨에 죽음이 있다.

그 둘숨과 날숨의 사이

그 사이가 생명이다.

숨결을 느끼는 것은 생명을 느끼는 것이다.

그 숨결을 느껴 본 이는 알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임을

그리고 하나님과 내가 하나임을 말이다.

이 숨의 결속에 나의 숨결을 알아차리고 사는 것

진정한 삶이요

은총이라 할 수밖에.

 

 

사다리

 

인간은

하늘과 땅을 잇는 의식의 사다리다.

 

물질세계에서 정신세계로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보이는 차원에서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다.

 

선생님이 바로 사다리다.

그리스도는 너무 높은 사다리라서

지금 당장 어떻게 오를 수가 없다.

우선 가장 가까이 있는 보이는 선생님이라는 사다리부터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 보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올라가

나와 하나님이 하나라는 임마누엘을 사실로서 경험하는 것

은총 중의 은총이 아닐가.

 

올라야 할 사다리를 오르지 ㅇ낳는데서 오는 것이

걱정이고 근심이다.

이 근심과 걱정을 넘는 비결은 하나, 그냥 오르는 것이다.

한걸음씩 한걸음씩 오르는 것이다.

 

여러 계단을 단번에 오르자는 것은 욕심이다.

한계단 한계단 침착하고 착실하게

내 호흡에 맞춰

내 걸음으로 올라가는 것뿐이다.

내가 나 되는 비결은 올라가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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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Books2021. 7. 14. 00:18

아침햇살의 천부경 강의

여는글과 1장

 

'나'는 하나에서 시작되어 하나로 돌아가는 '하나'다.

 

여는글

 

"앎의 욕구가 나를 살리고

우리를 구원합니다."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대상을 음미해야 한다.

음미할 때라야 만나는 세계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우주는 어떤 원리에의해 돌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더 사람답게 살고 아름답게 변화할 수 있을까...

물음을 곱씹는 중에 음미가 되고, 음미하는 가운데 또 다른 물음이 올라옵니다.

 

규칙과 한계를 뒤어넘은 자는 누구든 두 가지를 동시에 받습니다.

하나는 상이고 다른 하나는 벌이지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구는 그걸 벌로 받지만 누구에겐 거꾸로 상이 되는 겁니다.

어떤 일이 상인가 벌인가를 결정하는 건 순전히 내 해석에 달렸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미루면 안된다.

창조는 규칙을 넘어선 사람들만이 누리는 축복.

기술이란 한계를 넘고 또 넘어서는 가운데 터득되는 것.

무엇이 우리를 한계로부터 해방시킨다고요?

그래요. 앎에 대한 욕구 입니다.

 

죄라면 안해보는 것, 새로운 길을 안가보는 것, 기존의 한계에 갇혀 있으면서 그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게 죄죠.

 

 

1강

 

비롯함 없는 하나가

나타나기까지

 

비롯함 없는 하나

여기가 나없이있음의 절대계

그로부터 다시 하나가 시작되니

그것이 바로 디자이어

 

내가 누구인지 알아간다는 것은 우리 조상이 무엇을 읽었는지, 어떤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지, 후대를 향해 진짜 삶이 뭐라고 가르쳤는지, 그런 것을 잘 알아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그래서 천부경을 공부해야 하는 거예요.

 

81자에 담긴 우주의 원리

천부경

天 하늘천

符 부신부

經 지날경

 

 

 

 

사무시

일석삼극무

진본천일일지일

이인일삼일적십거무

궤화삼천이삼지이삼인이

삼대삼합육생칠팔구운삼사성

환오칠일묘연만왕만래용변부동변

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일종무종일

 

 

하늘의 본성은 빛

땅의 본성은 힘

사람의 본성은 기쁨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사람에게는 기쁨

 

머리는 진리의 빛으로 가슴은 사랑의 기쁨으로 배는 생명의 힘으로 가득차서 원만해집니다.

세모는 사람을, 네모는 땅을 원은 하늘을 상징

 

하늘(天) 영광(빛) 머리 진리 책, 강의
사람(人) 기쁨(빛+힘) 가슴 사랑 명상, 성찰
땅(地) 평화(힘) 생명 운동, 체조

 

중요한 것은 내가 태어나는 것

내 머리를 진리의 빛으로 채우고 가슴은 사랑으로 넘치게 하고 배는 생명 에너지로 꿈틀거리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원만해지지요.

원만(圓滿)이란 가득차는 것.

원이 커서 무한한 사랑과 지혜와 생명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불행한 이유가 뭘까요?

머리와 가슴과 배가 통합이 안되어서 그래요.

머리만 컸지 손발이 게으르니 지성과 행동 간에 균형이 안맞는 겁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렇게 된 건 어디에서도 그들에게 몸 움직이는 훈련을 시키지 않았으니까 몸 쓰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

골도 차고 가슴도 따뜻하고 손발도 부지런한 사람, 그 셋이 통합되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시무시일 一始無始一

 

하나는 비롯함 없는 하나에서 시작된다.

一 하나일

始 비롯할시

無 없을무

 

하나는 원인과 결과가 없는 세계, 곧 절대계를 의미하는 겁니다.

아침햇살이 묻지요.

"그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여기서 핵심은 '지금'이에요.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가 아닌 나입니다.

그 나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나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어디가 아닌 여기입니다.

지금 여기 이곳에 있습니까?

지금 이곳이 아닌 여기 있습니다.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의식으로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

원인과 결과,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운 그 하나는 없앨 수가 없습니다.

'여기 나 없이 있음'

비롯함이 없는 하나

도, logos, 순수의식, 무, 공, 브라흐만, 알라, 셀프...

그런 하나가 우리 모두 안에 있습니다.

인간뿐 아니라 돌 속에, 나무 안에, 풀 한 포기에도 있다고요.

그래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전부 하나인 겁니다.

그걸 사실로서 아는 것을 도통했다고 하지요.

절대계를 체험한 자만이 그 세계를 알아요.

 

두 번째 하나, 즉 '비롯함 없는 하나에서 시작된 하나'는 무엇일까요?

아침햇살은 그것을 욕망, 다시 말해 디자이어desire로 보고 싶습니다.

카발라: 이 세상을 나타나게 한 건 디자이어다.

나의 디자이어를 아는 게 결국 나를 아는 것이고, 나를 아는 게 하나를 아는 것이고, 하나를 아는 게 도와 무를 깨닫는 것 아니겠어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정자가 어머니의 난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서 이곳에 처음 왔지요. 그러고 나면 엄마 찾고 아빠찾고 장난감 찾고 친구 찾습니다. 더 커서는 이성 찾고 일을 찾고 스승을 찾고요.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찾아갑니다. 내게 맞는 색깔, 소리, 모양... 나아가 더 큰 세상, 더 아름다운 꿈을 향해서요. 그처럼 찾아가는 길 위에서 하늘의 진리, 우주의 근원, 참나의 본성을 알기 위해 여기까지 왔네요.

 

천부경을 찾아가는 첫 강의 오늘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눈뜨면 이리도 좋은 세상 120~138p

 

겨울나무

 

나무가 겨울을 나는 방법은 독특하다.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입고 걸치고 두를 때

나무는 오히려 다 벗는다.

그러고는 죽은 듯이 산다.

간소한 차림이다.

가진 것이 없으니 가볍다.

잃을 것이 없으니 편하다.

또 이 땅에 지난 가을에 씨앗을 남겼으니 여한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은 곧 끝나고 봄이 올 것이라는

소망과 믿음이 있다.

 

그 어떤 겨울이 온다 해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봄이 온다는 내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오늘로 끌어 당겨 사는 것이 믿음이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자연이 살고 있다.

열매를 만들고 그 안에 자기 보다 더 튼튼한 씨앗을 남기낟.

그러고는 죽은 듯이 산다.

죽은 듯이 있는 것이 겨울을 나는 비결 중의 비결이다.

내가 어떻게 해 보려고 잎을 가지고 있거나 열매를 갖고 있으면

나무 전체가 죽고 만다.

 

나무는 나가 없다.

잎을 바람에 날리고 열매를 새들에게 내 놓는다.

나 없이 죽은 듯이 있는 나무만이 봄을 맞는다.

나무는 나를 내세우지 않는다.

봄은 봄대로 받아들이고 겨울은 겨울대로 받아들인다.

스스로 그러함에 맡긴다.

자연이다.

그 자연은 스스로 비롯함

자유를 낳는다.

 

 

김치

 

된서리와 영하의 날씨를 잘 견디어 낸

얼이 꽉 찬 배추라야 김장 김치 자격이 있다.

한마디로 얼시구다.

배추가 김치가 되는 이 생명의 비밀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좋다.

삶의 신비와 오묘다.

 

 

 

잠자는 동안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고 오는 것일까?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무의식의 깊은 바다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에너지 충전을 받아오는 것이 잠이 아닐까.

잘 때 푹 자고 깰 때 분명히 깨어나는 것이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로 사는 것이다.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로 살자는 것이 영성생활이다.

 

 

여행

 

여행은 떠남이다.

익숙해져 편안해 거의 잊고 살던

일상을 떠나 보는 것이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 없이

어제의 습관에 따라 무의식중에 보고 듣고 행동한다.

이럴 때 사람은 떠나고 싶어한다.

 

떠나서 낯선 곳에서 불편함을 스스로 겪어 보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얼마동안을 살다보면

그동안 익숙해져 놓치고 타성에 젖어 지나쳤던

고마움과 감사를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그냥 떠나 낯선 곳을 평생 다니는 것은 방랑이요. 방황이다.

참다운 여행은 다시 자기 일상으로 돌아와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집을 떠나는 것이 십자가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부활이다.

 

여행은 이해하고 공감하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때

그 사람들의 마음이 되어

그 자리에 함께 시공간을 넘어

하나로 있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있어 볼 때 여행의 참맛은 일어나고

빛을 보는 관광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행은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

그 일상을 새롭게 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새롭게 한다는 것은

그 무엇을 고치고 바꾸는 것도 포함하지만

그 동안의 일상을 고맙고

감사함으로 만난다는 것이다.

여행은 익숙해져 무감각하게 마구 대하던

일상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새롭게 만만 빛으로

일상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일상을 거룩하게.

 

 

거울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알겠는가.

나를 아름답다거나 훌륭하다거나 조잡하다고 하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느냐 말이다.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라.

자신도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자신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리가 없다.

그러면서 누구는 괜찮다고 말하고

누구는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

다 말이다.

 

지금 자신이 누구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이처럼 모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말의 종합이 아닐까.

 

거울 앞에 서보면

허물을 감출 수가 없고 추한 것을 가릴 수가 없다.

그 어던 생각과 말도, 거울 앞에서는 아니다.

그 거울 앞에서는 과거도 없다. 미래도 없다.

어제의 옷맵시를 볼 수가 없고

내일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오직 지금 여기 뿐이다.

사람은 누구의 생각이나 말이나 견해를 통해서가 아닌

거울이라는 텅빔을 통해 자기를 보아야 한다.

텅빈 거울 앞에 선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이다.

 

거울 속의 거울

거울 없는 거울

이는 자기가 자기를 직접 보는 것이다.

직시다.

누구의 견해, 어떤 거울도 없이

자기를 자기가 직접보고 알면

그 다음부터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이

자기를 살게 된다.

현존은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기대로부터 자유하다.

현존은 지금 여기를 이곳에서 시방 사는 사람이다.

나는 원래 현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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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Books2021. 7. 14. 00:16

라보레무스 복습

 

지금 무언가 하나를 정해 그에 최선을 다 하는 것

형제자매간 우애있게 지내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언제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각자의 역할과 일은 달라집니다.

자기 본성이 무한한 영인 줄 모르고 변화할 줄 모르는 사람, 세상은 다 변화하는데 그에 맞춰 자기를 변화시킬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일을 잘할 수 없다.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어 내고 때와 장소와 역할에 맞게 나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잇는 사람은 일에 성공한다.

이런 사람만이 자기에게 잠재된 가능성을 현실로 바꿔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힘을 쓸 수 있는 건 지금뿐

예전에 했다는 생각, 앞으로 할 것이라는 생각, 생각은 생각일 뿐.

'싶다'병 극복하는 비결은 즉시 내 몸을 움직이는 것 뿐.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건 선생님을 만나는 것.

거듭나지 않고서는 뇌가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뇌가 매 순간 새롭지 않고서는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진짜 정체성을 모르는 데서 삶의 모든 불행이 시작되고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은 자기가 아닌 것에 자기를 동일시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진짜 나는 그 모든 것 너머에 존재한다.

뇌를 훈련하고 변화시키는 핵심은 '외부의 자극에 어떻게 응답하도록 만들 것인가'

90초 이후에는 우리 자신의 의지로 1퍼센트의 뇌를 가동시켜 새로운 반응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성공하려면 느끼고 싶은 감정은 더 느끼고 사는 쪽으로, 피하고 싶은 감정은 대면하여 극복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나의 진짜 욕망을 발견해 실현하고, 나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진화시키는 길입니다.

자기의 진짜 욕망을 모른다.

가짜인데 진짜로 속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거냐, 그림을 그려 돈 벌고 출세하고 싶은 거냐?"

자기의 참된 욕망을 알고 그것을 따라가면 길이 열립니다.

성공의 키워드 현 위치 파악과 목표 설정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

명예를 잃는 것은 절반을 잃는 것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

먹는 것이 바르고 건강해야 몸은 물론 마음도 건강해진다.

무엇이 나오든, 맛이 어떻든 그저 감사하며 먹지요.

그래야 음식이 내 안에서 좋은 기운을 일으키고

그 기운이 도한 내 일과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웃음과 감사의 망믕르로 하루를 시작하라.

훈련을 거듭할 때에만 내 삶에 웃을 일과 감사할 일만 생긴다.

잠이 하루를 좌지우지한다.

잠이란 휴식을 넘어서 창조력과 영감을 주는 새로운 채널이자, 하늘과 연결시켜주는 코드

생체시계를 잘 파악하고 또 조절하여 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

부와 사랑과 건강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지력과 심력과 체력을 키우는 것만이 잘 살 수 있는 길

잘 보고 하는 것.

소리내어 알리며 해 나간다.

내 진급과 승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줄 잘 서고 아부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당장 내 일이 아니고 내가 속한 부서의 일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야 해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면서 인맥을 쌓아야한다.

결정적인 순간 나를 도와줄 사람이 나타납니다.

삶의 진리는 가장 단순한데 있다.

오직 그 순간에 머물며 그 때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들을 다 알아차리는 것.

현재와 접촉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내게 일어나는 느낌과 생각과 행동들을 다 알아차려야 합니다.

분별하고 판단하지 않을 때 지금 여기에 있는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음.

가슴을 회복하려면 잘 듣고 잘 보는 훈련, 또 나를 이해하고 상대방에게 공감함으로써 관계 맺는 법을 훈련해야 하는 겁니다.

반복된 훈련만큼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소질과 재능의 차이는 거의 없다.

다만 연습 방법과 연습량의 차이로 실력이 나뉠 뿐이다.

자신의 현실에 감사하며 오직 연습에 연습을 해 나가십시오.

정리정돈과 청소를 못하는 사람을 보면 꼭 정신상태가 그렇습니다.

정리정돈은 외적으로만 필요한 게 아니라 내적으로도 필요하다 : ALP 깨어나기 수련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다.

자극과 응답 사이에서 내게 가장 좋은 최고를 선택하는 것.

잘 듣고 기억하기, 잘 보고 하기, 생각과 사실을 구분하여 알리기, 내 생각과 행동을 알아차리기, 정리정돈 잘하기 등은 모두 그 최고의 응답을 선택하기 위해 내가 키워야 할 덕목들입니다.

고통이야말로 나를 다시 제 궤도로 복귀시켜 최고의 선택을 내릴 수 있게 훈련하는 우주의 배려.

존재인 나와 이 세상에 나타난 나는 늘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다 되어 있음을 믿고 가십시오.

삶은 관계입니다.

삶이란 내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책은 수많은 이들의 뇌를 연결하여 소통하게 하는 일종의 단말기.

집안의 미래는 자식에게 달려 있고, 나라의 미래는 후대에 달려 있다.

일 속에 내가 가야 할 길이 있고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고 살아야 할 생명이 있으니 일을 통하지 않고서는 내가 나 될 수 없다.

내 소질과 재능을 발견해 그것을 일로 실현하고 지력과 심력과 체력을 키워서 일을 잘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이 지구에 온 목적이고 최고의 삶을 누리는 길.

삶의 핵심은 패스오버passover 와 바라밀다, 유월절,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데 있습니다.

내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을 넘고 넘어 계속해서 가야 한다.

 

 

 

눈 뜨면 이리도 좋은 세상 100~119p

 

 

새 해

 

새 해, 새 천년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만 있다.

다 인간들의 머리 속에나 있는 환상들이다.

해는 뜬 적도 없고 진 적도 없다.

뜨는 해와 지는 해가 있다고 생각세게에 있는 한 그것은 아직은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해가 뜨고 진다고 하는 것은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있다는 것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

바로 탄생과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 있는데 어디 그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지구별에 온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죽음과 탄생이 있다는

상대세계를 경험하고

그것을 넘어 이것도 저것도 모두 절대세계가 있음을

알아차리기 위함이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온 것이다.

다시 태어나려면 뜨는 해가 아닌 영원한 해

지는 해가 아닌 살아 있는 해를 만나야 한다.

그 해를 만나는 것이 새 해요 새 천년이다.

뜬 적이 없어 질 수 없는 영원한 태양이신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태어난 날

크리스마스!

새 해요

새 천년이다.

 

 

낮12시

 

정오는 그림자가 없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림자가 없다는 말은 죄가 없다는 말이요

욕심이 사라졌다는 말이요

근심과 걱정과 불안이 없다는 말이다.

 

 

가을

 

무엇이든지 그 나름대로 목적과 이유가 있다.

바울은 부활의 생명이 목적이었다.

언 땅을 갈아 업고 흙을 깨고 부수어 씨앗을 뿌리고

바람과 비와 햇빛과 들짐승과 새들을 넘어선

농부에게만 가을은 있다.

가을이 와서 거둘 것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내 논밭에 있는 가을이 진짜 내 가을이다.

 

 

단 맛

 

단맛은 떫은 맛이 변하여 되는 맛이다.

떫은맛이 꽉 찼을 때 변화는 일어나는 것이다.

인생도 믿음의 단맛을 보기까지는 불안의 떫은맛을 봐야한다.

소망의 단맛을 보기까지는 절망의 시린 맛도 보아야 한다.

사랑의 단맛을 보기까지는 두려움의 아린 맛을 봐야 한다.

떫고, 시리고, 아린 맛이 찼을 때 변화가 일어나

그 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단맛이 솟아나는 것이다.

 

단맛 중의 단맛

최고의 단맛은 뭐니 뭐니 해도 깨어나는 것이다.

깨어나면 보이게 되고 알 수 있다.

다 좋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고마울 뿐이다.

 

 

감 알

 

가을은 익는 계절이다.

익었다는 말은 성숙했다는 말이다.

이제 다 아루었다는 말이다.

이제 나는 나로서 다 이루었으니 먹어 달라는 말이다.

먹히고 싶다는 말이다.

익어야 과일이듯이 

사람도 익어야 사람이다.

나도 나 아닌 것들을 견뎌 익어야겠다.

익는 비결은 견디는 것이다.

견디어 낼 때만

감은 익은 빨간 감알이 되어 하늘에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이래야 할 순간이다.

 

 

등 산

 

사람은 한번 산에 올라가 보아야 한다.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전체를 볼 수 없다.

전체를 보지 못하면 인생의 방향을 잡을 수 없다.

정상에 오른다.

전체가 보인다.

방향을 알 수가 있고 선 자리가 어딘지를 안다.

지나온 길이 보인다.

선 자리를 알고 방향을 아니 갈 길을 안다.

살 가치를 느끼고 의미를 발견한다.

일상과 영원이 떨어져 잇지 않아 불안하지 않고

하늘과 땅의 통합이 나라는 믿음을 발견한다.

바로 영생을 사는 삶이다.

언제나 기뻐하고 어디서나 감사하고 누구나 통한다.

산에 오를 수 있는 다리의 힘을 기르자

독립이다.

볼 수 있는 열린 눈을 갖자.

통일이다.

들을 수 있는 들을 귀를 갖자.

자유다.

Posted by logos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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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Books2021. 7. 14. 00:01

라보레무스 8장

 

풍성한 삶을 만들 지력은 책에서 나온다

/일 잘하는 셋째 방법, 지력 기르기/

 

원만함, 최고가 되는 비결

 

삶은 관계입니다.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밤에 잠들기까지 내게 일어나는 것 중 관계 아닌 것이 없어요.

관계는 이처럼 세 가지 요소, 즉 시간, 공간, 인간으로 구성됩니다.

이 중 하나만 빠져도 관계가 일어날 수 없어요. 

그렇다면 결국 나의 삶이란 내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닐까요.

관계는 곧 삶이고, 삶은 곧 일.

관계를 잘 맺는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라는 세 요소가 가장 잘 어우러져서, 즉 천지인이 조화를 이루고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일체로 만나 원만해지는 것이지요.

또 일을 잘한다는 것은 머리와 가슴과 배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지력과 심력과 체력이 고루 발달해, 역시 원만해지는 것입니다.

시간, 공간, 인간 중 어느 하나만 빠져도 관계가 성사되지 않는 것처럼 일도 마찬가지예요.

지력, 심력, 체력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그 셋을 연결한 원이 찌그러집니다.

그래서야 제대로 잘 굴러갈 수가 없지요.

또 셋 다 크기가 작으면 원 자체도 작아져서 작은 고랑 하나만 만나도 그 속에 빠져 헤어나질 못합니다.

제가 항상 최고의 삶은 원만한 삶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에요.

원이 크고 가득 차야 해요.

그래야 관계도 일도 잘 굴러갑니다.

또한 삶이 무한히 커져서 그 안에 품지 못할 것이 없어집니다.

말하자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는 겁니다.

 

책을 읽으라.

지력은 책을 읽지 않고서는 키울 수가 없기 때문.

인문학이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SSLANT교육법

S smile

S sit up

L listen

A ask question

N nod when being spoken to

T track with your eyes

 

공부를 함으로써 그들의 운명이 바뀐 거예요.

똑바로 앉고, 잘 듣고, 모르는 것은 질문하고, 남이 얘기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하고, 잘 웃고,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을 잘 따라가면서 공부를 했기에, 즉 지력이 커져서 삶이 변화했다는 말입니다.

 

책은 수많은 이들의 뇌를 연결하여 소통하게 하는 일종의 단말기

 

뭐든 내 머리가 뜨거워지고 열 받는 그 순간을 넘겨야 합니다.

그래야 뇌가 한 차원 높게 바뀌고, 그보다 더 위로 올라설 가능성 또한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뇌를 자극하고 훈련시키길 원하는 사람은 기존의 뇌로 돌아가려는 본인의 습관에 저항을 해야 해요.

저항력을 키워야 뇌의 이곳저곳에 불이 켜지면서 인생길이 환하게 밝아 오기 시작합니다.

 

집안의 미래는 자식에게 달려 있고, 나라의 미래는 후대에 달려 있다.

스마트폰과 게임과 텔리비전과 과자와 인스턴트 식품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세요.

그것만이 아이들의 지력과 심력과 체력을 고루 발전시켜 우리 집안을, 나아가 우리나라를 무가탈하게 만드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력은 오직 책을 통해서만 키울 수 있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루에 한 쪽이라도 책을 읽어야 해요.

그것이 평생 쌓이면 그만큼 내 지력이 강화됩니다.

 

일 속에 내가 가야 할 길이 있고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고 살아야 할 생명이 있으니 일을 통하지 않고서는 내가 나 될 수 없다.

내 소질과 재능을 발견해 그것을 일로 실현하고 지력과 심력과 체력을 키워서 일을 잘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이 지구에 온 목적이고 최고의 삶을 누리는 길.

참나를 기억하기 위해, 하루에 20분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요히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텅 비어 있어서 내가 자유자재로 채워 넣을 수 있는 그 존재와 소통하고 교류하라는 말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참나와 접속함으로써 내게는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능력이 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무엇에든 두려움 없이 '예스'로 화답하며 전심전력을 다하는 가운데, 잃어버린 디자이어와 접촉하여 진정한 자신의 일과 삶을 찾게 될 것입니다.

삶의 핵심은 패스오버와 바라밀다, 유월절,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데 있습니다.

넘어간다는 것은 계속한다는 거지요.

계속해서 뭔가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을 넘고 넘어 계속해서 가야 한다.

 

 

 

 

눈뜨면 이리도 좋은 세상 75~99p

 

 

삶의 예술

 

예술은 사람의 감정을 동하게 하여 기쁨을 주고

생각을 더하게 하여 희망을 일으키고

몸을 동하게 하여 아름다움을 지어낸다.

나타난 모든 것들이 다 예술이다.

예술은 사람 속에 잠재해 있던 온갖 느낌과 생각들을 알아차리게 해준다.

사람은 어찌하든지 감동 속에 있어야 한다.

삶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는 것이다.

창조성을 만나서 자율을 산다.

예술이 있어 예술가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가 있어 예술을 낳는 것이다.

 

 

어머니

 

어머니가 지나간 자리는 깨끗하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지저분하고 어수선하다.

가족이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치우고 닦는 어머니가 있어야한다.

회사가 살기 위해서는 놀 때 일하고

싫은 일을 해내는 회사의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

나라꼴이 되기 위해서는 나라의 힘든 일을 하고 괴로움을 짊어지는

나라의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

어머니는 생명을 낳는 생명이다.

 

 

 

산은 살아 잇어서 산이다.

살아 잇다는 말은 변한다는 말이다.

살아있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다.

산은 그렇게 변하며 사랑하면서 우뚝 서서 살아있다.

나는 그런 산이고 싶다.

율곡은 열아홉에 금강산에 들어가면서 내가 금강산에 들어감은 내 안에 금강산을 만나기 위함이라고 했단다.

내가 산이 되고 싶은 것은 내 안에 이미 산이 있어서다.

산을 찾아 결국 산과 같이 되는 것이 인생이다.

 

 

 

나의 봄은 내 안에 꽃을 피워 봄이 되게 하여야 한다.

살라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은 이미 소질 속에 들어 있고

재능 속에 나타나 있다.

 

 

 

몸은 모임이다.

한 몸에 온 우주가 다 모여 있다.

몸은 모임이라서

원래부터 우주와 아주 밀접한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그 무엇 하나 따로 있을 수 없고

관계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이런 기억이 있어 내가 있고

나의 삶이 있는 것이다.

몸과 영혼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으면서

질료와 형상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몸이 더욱 현실화 되면 될수록

더욱더 영혼이 잘 드러나게 된다.

몸은 보이는 영혼이다.

영혼은 보이지 않는 몸이다.

 

 

하루

 

인생은 이렇게 하루를 산다.

하루를 살고 하루를 살게 되어있다.

하루 속에 인생이 다 들어있다.

문제의식을 갖고 죄의식을 갖기 시작하는 것

사람됨의 시작.

오성과 이성과 영성과 감성으로 된 사람인 내가

삶의 선생인 철학과 과학과 종교와 예술을 만나서

결국은 신인 사랑이 되는 것이다.

사람, 삶, 사랑

사람이 신이 되는 길이 하루 속에 있다.

 

Posted by logos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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