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Books2021. 7. 14. 13:48

아침햇살의 천부경 강의

 

2장

인간의 가능성은

일적십거에 있다

 

변하지 않는 가운데 변화하고

뿌리를 내리면서 동시에 나아가는 삶

하나에서 시작해 완성을 이루는

일적십거 一積十鉅의 삶

 

노예의 주문에서 벗어나 주인 되기

많은 이들이 다른사람들의 말에, 다른 사람의 시선에, 비판에, 평가에 걸려들어 옴짝달싹 못하고 산다.

 

예수가 앉은뱅이에게 묻지요.

당신이 원하는 게 뭐요?

일어나 걷는 겁니다.

그래? 그럼 일어나 걸어라!

이게 전부입니다.

문제가 무엇이냐, 원인이 무엇이냐 묻지 않아요.

다만 원하는 것을 물을 뿐입니다.

그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거라고요.

 

과거에는 군부독재나 파시즘이나 쇼비니즘 같은 것이 무서웠죠.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건 자본과 시장 독재 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체제에 마비되어서 돈이 제일인 줄 알고 살기 쉬워요.

그래서 돈 놓고 싸우는 삶을 택하는 겁니다.

예수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붓다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불성이 있다고 했고요.

그러니 어떻게 살라고요?

비교하지 말라는 거죠.

주문에 걸려들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안에 빛이 있으니 그걸 드러내며 살라는 겁니다.

그런데 나를 모르면 어떻게 돼요?

빛이 안드러나요.

그러니 어둠 쪽으로 가는 게 당연합니다.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니까요.

디자이어란 각자의 독특한 생명력.

세상에 나타난 모든 것은 디자이어를 갖고 옵니다.

나의 디자이어를 알아야 나로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요.

이 디자이어는 비롯함이 없는 하나, 즉 무와 영에 가장 가까이 잇어요.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지요.

천부경 또한 표현만 다를 뿐 디자이어의 속성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석삼극무진본 析三極無盡本

천이일지일이인일삼 天一一地一二人一三

하나가 삼극(천지인)으로 나뉘어도 근본은 변함이 없으며

(하나의) 천이 일로, (하나의) 지가 이로, (하나의) 인이 삼으로 분화된다.

 

析 쪼갤 석

三 셋 삼

極 지극할 극

盡 다할 진

本 근본 본

天 하늘 천

地 땅 지

人 사람 인

 

비롯함이 없는 하나가 셋으로 나누니다 해도 근본은 변함이 없다.

비롯함 없는 하나로부터 수많은 디자이어가 나타나도 근본, 즉 애초의 그 하나는 그대로라는 겁니다.

애초의 그 하나와 거기서 나온 디자이어는 분리할 수가 없는 겁니다.

변화하나 근본은 변화하지 않는 것, 이게 바로 핵심이예요.

 

대일→석삼극
大一→析三極
1→3
천(天) - 일(一) - 석삼극(析三極)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
지(地) - 이(二) - 석삼극(析三極) 천이일(天二一)
지이이(地二二)
인이삼(人二三)
인(人) - 삼(三) - 석삼극(析三極) 천삼일(天三一)
지삼이(地三二)
인삼삼(人三三)

 

ALP 수련의 두 가지 중요한 개념

'여기 나 없이 있음'

'이곳 나 되어감'

 

근본은 변화하지 않지만 그게 세상에 나타날 때는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옵니다.

그러니 그걸 어느 때, 어느 공간에 맞춰 잘 적용하느냐에 따라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모양새가 달라지겠죠. 

시간과공간과 인간에 맞게 자유자재, 능수능란하게 변화하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변화의 최고 경지예요.

우주 만물의 핵심은 변화에 있습니다.

개인이든 회사든 나라든, 때에 맞게 변화해야 앞서가지 않습니까?

내가 어느 분야에 고나해 때를 잘 모르면 그 방면에서 철인으로 인정받은 자에게 물어보세요.

 

 

일적십거무궤화삼 一積十鉅無櫃化三

하나가 쌓여 십으로 커질 때 삼극이 무한하게 변화하니

 

積 쌓일 적

十 열 십

鉅 커질 거

櫃 궤(다함) 궤

化 변화 화

 

천이삼지이삼인이삼 天二三地二三人二三

천이 둘로, 지가 둘로, 인이 둘로 나뉘어도 삼극이다.

 

이 세상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분화되지만 근본인 하나는 그대로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두 가지 주제로 정리하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으로 나눌 수 있지요.

 

시무시

일석삼극무

진본천일일지일

이인일삼일적십거무

궤화삼천이삼지이삼인이

삼대삼합육생칠팔구운삼사성

환오칠일묘연만왕만래용변부동변

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일종무종일

 

 

<내 인생 실현 사다리>

... ↑이곳 나 되어감 (becoming)
디자이어...
존재, 하늘, self... 여기 나 없이 있음 (being)

나타남에서 사라짐으로,

그 기반 위에서 다시 나타나
되어가는 과정이 삶이다
(일음일양위지도)
오늘... 디자이어의 실현을 통한 '나'와 '그'의 통합 ↑ 이곳 나 되어감 (becoming)
금주 계획
금년 목표
중장기 계획... 삶의 4가지 영역에서 관계 맺기. 그를 통한 가치 실현
생각(가치)... '어떤'의 영역. 느낌이 물질화 된 것
영혼느낌(디자이어를 감지하는 센서) ... 시방느낌은?
디자이어 desire (생명력, 하늘씨앗)... 디자이어를 알아야 참나를 만날 수 있다
존재, 하늘, self, 영원, 도, 무, 공  여기 나 없이 있음 (being)

 

존재계 3번가 4번가
1번가 2번가
  현상계

*존재계 - 여기나없이있음, Being, 이理, 영혼, 정신, 보리, 예...

*현상계 - 이곳나되어감, Becoming, 氣, 육체, 물질, 살타, 혀...

 

1번가에 사는 사람은 뭐가 변하고 변하지 않는지도 몰라요.

2번가 사람들은 변하는 것에만 취해서 살고요.

3번가 사람은 비롯함 없는 하나에만 머물러 있지요.

분화하고 변화하는 단계로 가야 하는데 이건 안 하고 변하지 않는 본질만 잡고 있는 겁니다.

4번가의 삶을 사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을 조율하면서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춥니다.

뿌리는 늘 변함없는 근본에 두고 때에 맞추어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한다는 겁니다.

 

근본에만 뿌리 박고 가만히 잇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근본을 잊어버리면 삶 자체가 흔들려요.

중심이 없기 때문이지요.

다만 역할이잖아요.

그 역할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역할 찾으면 돼요.

그게 능수능란, 자유자재하게 사는 삶입니다.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실패할수도, 성공할 수도 있는 거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영혼이 진실로 원하는 것을 할 때 존재가 더 만족하고 역할은 존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쌓고 또 쌓는 것이 완성의 지름길

일적십거무궤화삼이란, 근본은 변하지 안으니 걱정말고 제발 좀 쌓고 쌓아서 성장해 봐라, 할 수 있는 만큼 커져봐라, 이 소리입니다.

자기 내면의 술에 취해서 그 길을 계속 가는 게 바로 일적십거를 이루는 비결이예요.

인간의 가능성은 일적십거에 있어요.

쌓고 쌓아서 십거, 즉 완성을 이루는데 있다고요.

부처님도 반야심경을 설파하면서 그러셨잖아요.

넘고 넘고 또 넘어 가라고, 그럴 때 궁극의 지혜를 얻게 된다고요.

 

일단 시작할 때 가능성이 열린다

그런데 사람들이 일적은 안 하고 십거를 이루길 바라지요.

하나 쌓는 건 등한시하면서 완성을 원해요.

온갖 한계는 다 갖다 붙여놓고선 감히 무궤를 꿈꾼다고요.

규칙과 한계들을 넘어설 때만 창조가 일어나고, 그 창조 행위를 통해 하나씩 쌓아갈 때 비로서 십거가 이루어지는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삶의 본질은 패스오버, 유월절, 바라밀다라고 그랬죠.

넘고 또 넘어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십거가 된다고요.

없다고 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들어 놓은 한계다.

그런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긴다.

 

창조는 기존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일어납니다.

칭찬뿐 아니라 비판의 소리까지 다 수용.

이렇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기의 물음을 놓치지 말아야해요.

자기 물음이 있으면 경험이 풍부해지고 그만큼 더 깊게 삶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람되려, 살러 온 거지요.

그러니 물음을 가지세요.

그리고 그 위에서 좋은 건 다 받아들이십시오.

 

 

 

눈뜨면 이리도 좋은 세상 139~158p

 

 

산다는 것은 맛을 본다는 것이다.

입맛이 잇고 살맛이 있다.

달고, 쓰고, 시고, 짜고, 맵고, 싱겁고

떫고, 텁텁하고, 후끈하고, 고소하고

구수하고, 상큼하고, 화끈하고, 아리고 등등

여러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은총 중의 은총이 아닐까?

 

어린시절에 임밧을 잃었을 때

아주 쓴 익모초를 한 사발씩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주 쓴맛을 보아야

제 입맛이 제대로 돌아올 줄 알았던 것이다.

 

살맛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쓴약을 한 번 들이켜 마셔봐야 한다.

고통이라는 쓴맛

고난이라는 신맛들을 봐야

인생의 살맛을 그때서야 느낀다.

정신이 차려지고 얼이 차려진다.

말씀의 세계에서 보면 세상에는 맛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단지 내가 그 본래의 맛을 못 느낄 뿐이고

또 어떤 맛만 느끼려는 편식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선 자기 맛부터 느껴 보자.

자기 맛에 취해 자기 맛을 내는 사람

살맛 나는 사람이다.

살맛을 내니 그 사람을 서로 맛보려고 하지 않을까?

 

맛있는 사람

바로 멋있는 사람이다.

 

 

쉼표와 마침표

 

쉬어야 하는데 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하는 것, 무위의 위

이는 창조 중의 창조다.

 

들숨과 날숨을 가만히 지켜볼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자기의 한계와 자기의 분수를 알게 된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 한계와 분수르 ㄹ알게 될 때

참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마침표가 필요하다.

일단 한 뭄장과 말을 마쳐야 다음 문장과 말을 할 수 있다.

하던 일을 마칠 줄 알아야 한다.

관계 하는 관계르 ㄹ일단 정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일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쉬어야 할 적당한 곳에 쉼표가 찍히고

마쳐야 할 때 마침표가 찍힌 문장과 글은 시원시원하다.

그런 글은 읽기에 좋고 그런 사람은 보기에도 좋다.

의사전달이 잘 되어 분명하고 명료하다.

이런 삶은 참 시원하다.

 

 

화에너지를 창조에너지로

 

화는 불이다.

불은 활활 타야 불이다.

화는 에너지다.

이 에너지를 어떠헥 변화시키고 사느냐가 자기 삶이 된다.

아무데서나 불을 내면 화재가 된다.

너도 죽고 나도 죽이는 것이 화재다.

그러나 불을 제대로 쓰면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고

자동차를 움직이고 우주선을 달나라까지 쏘아 올리는 힘이 되고

쌀쌀맞은 쌀을 밥으로 만드는 생명이 된다.

 

화는 빛과 힘과 생명을 품고 있는 에너지다.

그대 안에 그렇게 있는 화에너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그냥 묻어 두는 것도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다울 때는 분노를 느낄 때다.

사랑에 불이 타고

정의에 불이 타고

의리에 불이 타야 한다.

그때 사람은 영혼의 무게가 더해지고

영혼의 깊이가 더해진다.

십자가 없이 부활이 없듯이

분노 없이 평화가 없다.

포도가 긇어오르지 않으면 포도주가 되지 못한다.

쌀이 끓어오르지 않으면 밥이 되지 못한다.

구들이 데워지지 않으면 방은 따뜻해지지 않는다.

 

불의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가난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교만한 힘에 대해 분노를 느낄 때

비로소 우리 안에 불이 붙는다.

이렇게 일어난 불을 창조에너지를 변화시키는 것이

내가 누리는 삶의 질이다.

 

자신의 무지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자신의 두려움에 분노를 느끼고

자신의 수치심에 분노를 느낄 때

그 사람은 불이 되어 활활 타서

그런 자신을 화로 다 태워서

빛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삶의 연금술이다.

 

 

하나

 

행복은 몸과 마음이 하나될 때 느끼는 뇌의 작동 중의 하나다.

자기가 화가 나 있는데 화가 나 잇는 줄을 모르고

고마운데 고마운 것을 모른다.

몸 따로, 마음 따로다.

이는 죽음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기분 나빠지는 기술들을 참 많이도 갖고 있는데

기분좋아지는 기술은 별로 없다.

몸 따로 마음 따로에서 나오는 것이 갈등이다.

마음 따로 일 따로 속에서 나오는 것이 원망이다.

일 따로 몸 따로에서 나오는 것이 짜증이다.

 

갈등과 원망과 짜증을 넘어

조화와 감사와 기쁨을 사는 길은 하나다.

몸과 마음을 하나되게 하고

일과 마음을 하나되게 하고

몸과 일을 하나되게 하는 것뿐이다.

따로가 아닌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법칙이다.

 

그 모든 것을 하나되게 하는 것이

들숨과 날숨인 호흡이고

그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삶에 최고 비밀 중의 비밀이다.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면서 얼굴에 미소를 지을 때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일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몸과 일이 하나가 된다.

그 하나됨에서 일어나는 것이 행복이다.

 

들숨에 하나

날숨에 둘

들숨에 지금

날숨에 여기

들숨에 지금 이 순간

날숨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하고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삶의 예술가로 사는 모습이다.

 

 

숨결

 

들숨과 날숨

그 사이의 여백을 놓치니

생각에 빠지고 느낌에 휘둘리게 된다.

 

들숨에 탄생이 있다.

날숨에 죽음이 있다.

그 둘숨과 날숨의 사이

그 사이가 생명이다.

숨결을 느끼는 것은 생명을 느끼는 것이다.

그 숨결을 느껴 본 이는 알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임을

그리고 하나님과 내가 하나임을 말이다.

이 숨의 결속에 나의 숨결을 알아차리고 사는 것

진정한 삶이요

은총이라 할 수밖에.

 

 

사다리

 

인간은

하늘과 땅을 잇는 의식의 사다리다.

 

물질세계에서 정신세계로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보이는 차원에서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다.

 

선생님이 바로 사다리다.

그리스도는 너무 높은 사다리라서

지금 당장 어떻게 오를 수가 없다.

우선 가장 가까이 있는 보이는 선생님이라는 사다리부터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 보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올라가

나와 하나님이 하나라는 임마누엘을 사실로서 경험하는 것

은총 중의 은총이 아닐가.

 

올라야 할 사다리를 오르지 ㅇ낳는데서 오는 것이

걱정이고 근심이다.

이 근심과 걱정을 넘는 비결은 하나, 그냥 오르는 것이다.

한걸음씩 한걸음씩 오르는 것이다.

 

여러 계단을 단번에 오르자는 것은 욕심이다.

한계단 한계단 침착하고 착실하게

내 호흡에 맞춰

내 걸음으로 올라가는 것뿐이다.

내가 나 되는 비결은 올라가는 길뿐이다.

Posted by logos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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