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Books2021. 7. 14. 00:18

아침햇살의 천부경 강의

여는글과 1장

 

'나'는 하나에서 시작되어 하나로 돌아가는 '하나'다.

 

여는글

 

"앎의 욕구가 나를 살리고

우리를 구원합니다."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대상을 음미해야 한다.

음미할 때라야 만나는 세계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우주는 어떤 원리에의해 돌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더 사람답게 살고 아름답게 변화할 수 있을까...

물음을 곱씹는 중에 음미가 되고, 음미하는 가운데 또 다른 물음이 올라옵니다.

 

규칙과 한계를 뒤어넘은 자는 누구든 두 가지를 동시에 받습니다.

하나는 상이고 다른 하나는 벌이지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구는 그걸 벌로 받지만 누구에겐 거꾸로 상이 되는 겁니다.

어떤 일이 상인가 벌인가를 결정하는 건 순전히 내 해석에 달렸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미루면 안된다.

창조는 규칙을 넘어선 사람들만이 누리는 축복.

기술이란 한계를 넘고 또 넘어서는 가운데 터득되는 것.

무엇이 우리를 한계로부터 해방시킨다고요?

그래요. 앎에 대한 욕구 입니다.

 

죄라면 안해보는 것, 새로운 길을 안가보는 것, 기존의 한계에 갇혀 있으면서 그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게 죄죠.

 

 

1강

 

비롯함 없는 하나가

나타나기까지

 

비롯함 없는 하나

여기가 나없이있음의 절대계

그로부터 다시 하나가 시작되니

그것이 바로 디자이어

 

내가 누구인지 알아간다는 것은 우리 조상이 무엇을 읽었는지, 어떤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지, 후대를 향해 진짜 삶이 뭐라고 가르쳤는지, 그런 것을 잘 알아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그래서 천부경을 공부해야 하는 거예요.

 

81자에 담긴 우주의 원리

천부경

天 하늘천

符 부신부

經 지날경

 

 

 

 

사무시

일석삼극무

진본천일일지일

이인일삼일적십거무

궤화삼천이삼지이삼인이

삼대삼합육생칠팔구운삼사성

환오칠일묘연만왕만래용변부동변

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일종무종일

 

 

하늘의 본성은 빛

땅의 본성은 힘

사람의 본성은 기쁨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사람에게는 기쁨

 

머리는 진리의 빛으로 가슴은 사랑의 기쁨으로 배는 생명의 힘으로 가득차서 원만해집니다.

세모는 사람을, 네모는 땅을 원은 하늘을 상징

 

하늘(天) 영광(빛) 머리 진리 책, 강의
사람(人) 기쁨(빛+힘) 가슴 사랑 명상, 성찰
땅(地) 평화(힘) 생명 운동, 체조

 

중요한 것은 내가 태어나는 것

내 머리를 진리의 빛으로 채우고 가슴은 사랑으로 넘치게 하고 배는 생명 에너지로 꿈틀거리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원만해지지요.

원만(圓滿)이란 가득차는 것.

원이 커서 무한한 사랑과 지혜와 생명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불행한 이유가 뭘까요?

머리와 가슴과 배가 통합이 안되어서 그래요.

머리만 컸지 손발이 게으르니 지성과 행동 간에 균형이 안맞는 겁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렇게 된 건 어디에서도 그들에게 몸 움직이는 훈련을 시키지 않았으니까 몸 쓰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

골도 차고 가슴도 따뜻하고 손발도 부지런한 사람, 그 셋이 통합되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시무시일 一始無始一

 

하나는 비롯함 없는 하나에서 시작된다.

一 하나일

始 비롯할시

無 없을무

 

하나는 원인과 결과가 없는 세계, 곧 절대계를 의미하는 겁니다.

아침햇살이 묻지요.

"그대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여기서 핵심은 '지금'이에요.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가 아닌 나입니다.

그 나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나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어디가 아닌 여기입니다.

지금 여기 이곳에 있습니까?

지금 이곳이 아닌 여기 있습니다.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의식으로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

원인과 결과,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운 그 하나는 없앨 수가 없습니다.

'여기 나 없이 있음'

비롯함이 없는 하나

도, logos, 순수의식, 무, 공, 브라흐만, 알라, 셀프...

그런 하나가 우리 모두 안에 있습니다.

인간뿐 아니라 돌 속에, 나무 안에, 풀 한 포기에도 있다고요.

그래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전부 하나인 겁니다.

그걸 사실로서 아는 것을 도통했다고 하지요.

절대계를 체험한 자만이 그 세계를 알아요.

 

두 번째 하나, 즉 '비롯함 없는 하나에서 시작된 하나'는 무엇일까요?

아침햇살은 그것을 욕망, 다시 말해 디자이어desire로 보고 싶습니다.

카발라: 이 세상을 나타나게 한 건 디자이어다.

나의 디자이어를 아는 게 결국 나를 아는 것이고, 나를 아는 게 하나를 아는 것이고, 하나를 아는 게 도와 무를 깨닫는 것 아니겠어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정자가 어머니의 난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서 이곳에 처음 왔지요. 그러고 나면 엄마 찾고 아빠찾고 장난감 찾고 친구 찾습니다. 더 커서는 이성 찾고 일을 찾고 스승을 찾고요.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찾아갑니다. 내게 맞는 색깔, 소리, 모양... 나아가 더 큰 세상, 더 아름다운 꿈을 향해서요. 그처럼 찾아가는 길 위에서 하늘의 진리, 우주의 근원, 참나의 본성을 알기 위해 여기까지 왔네요.

 

천부경을 찾아가는 첫 강의 오늘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눈뜨면 이리도 좋은 세상 120~138p

 

겨울나무

 

나무가 겨울을 나는 방법은 독특하다.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입고 걸치고 두를 때

나무는 오히려 다 벗는다.

그러고는 죽은 듯이 산다.

간소한 차림이다.

가진 것이 없으니 가볍다.

잃을 것이 없으니 편하다.

또 이 땅에 지난 가을에 씨앗을 남겼으니 여한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은 곧 끝나고 봄이 올 것이라는

소망과 믿음이 있다.

 

그 어떤 겨울이 온다 해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 이유는

봄이 온다는 내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오늘로 끌어 당겨 사는 것이 믿음이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자연이 살고 있다.

열매를 만들고 그 안에 자기 보다 더 튼튼한 씨앗을 남기낟.

그러고는 죽은 듯이 산다.

죽은 듯이 있는 것이 겨울을 나는 비결 중의 비결이다.

내가 어떻게 해 보려고 잎을 가지고 있거나 열매를 갖고 있으면

나무 전체가 죽고 만다.

 

나무는 나가 없다.

잎을 바람에 날리고 열매를 새들에게 내 놓는다.

나 없이 죽은 듯이 있는 나무만이 봄을 맞는다.

나무는 나를 내세우지 않는다.

봄은 봄대로 받아들이고 겨울은 겨울대로 받아들인다.

스스로 그러함에 맡긴다.

자연이다.

그 자연은 스스로 비롯함

자유를 낳는다.

 

 

김치

 

된서리와 영하의 날씨를 잘 견디어 낸

얼이 꽉 찬 배추라야 김장 김치 자격이 있다.

한마디로 얼시구다.

배추가 김치가 되는 이 생명의 비밀

얼시구, 절시구, 지화자, 좋다.

삶의 신비와 오묘다.

 

 

 

잠자는 동안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고 오는 것일까?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무의식의 깊은 바다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에너지 충전을 받아오는 것이 잠이 아닐까.

잘 때 푹 자고 깰 때 분명히 깨어나는 것이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로 사는 것이다.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로 살자는 것이 영성생활이다.

 

 

여행

 

여행은 떠남이다.

익숙해져 편안해 거의 잊고 살던

일상을 떠나 보는 것이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 없이

어제의 습관에 따라 무의식중에 보고 듣고 행동한다.

이럴 때 사람은 떠나고 싶어한다.

 

떠나서 낯선 곳에서 불편함을 스스로 겪어 보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얼마동안을 살다보면

그동안 익숙해져 놓치고 타성에 젖어 지나쳤던

고마움과 감사를 알아차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그냥 떠나 낯선 곳을 평생 다니는 것은 방랑이요. 방황이다.

참다운 여행은 다시 자기 일상으로 돌아와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집을 떠나는 것이 십자가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부활이다.

 

여행은 이해하고 공감하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때

그 사람들의 마음이 되어

그 자리에 함께 시공간을 넘어

하나로 있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있어 볼 때 여행의 참맛은 일어나고

빛을 보는 관광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행은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

그 일상을 새롭게 할 때 완성되는 것이다.

 

새롭게 한다는 것은

그 무엇을 고치고 바꾸는 것도 포함하지만

그 동안의 일상을 고맙고

감사함으로 만난다는 것이다.

여행은 익숙해져 무감각하게 마구 대하던

일상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새롭게 만만 빛으로

일상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일상을 거룩하게.

 

 

거울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알겠는가.

나를 아름답다거나 훌륭하다거나 조잡하다고 하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느냐 말이다.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라.

자신도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자신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리가 없다.

그러면서 누구는 괜찮다고 말하고

누구는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

다 말이다.

 

지금 자신이 누구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이처럼 모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말의 종합이 아닐까.

 

거울 앞에 서보면

허물을 감출 수가 없고 추한 것을 가릴 수가 없다.

그 어던 생각과 말도, 거울 앞에서는 아니다.

그 거울 앞에서는 과거도 없다. 미래도 없다.

어제의 옷맵시를 볼 수가 없고

내일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오직 지금 여기 뿐이다.

사람은 누구의 생각이나 말이나 견해를 통해서가 아닌

거울이라는 텅빔을 통해 자기를 보아야 한다.

텅빈 거울 앞에 선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이다.

 

거울 속의 거울

거울 없는 거울

이는 자기가 자기를 직접 보는 것이다.

직시다.

누구의 견해, 어떤 거울도 없이

자기를 자기가 직접보고 알면

그 다음부터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이

자기를 살게 된다.

현존은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기대로부터 자유하다.

현존은 지금 여기를 이곳에서 시방 사는 사람이다.

나는 원래 현존이다.

Posted by logosles

댓글을 달아 주세요